
대중교통 이용 시내 나들이
자가용 1시간 거리 2시간 걸려
다양한 개선책 마련 필요
2시간 걸어본 구도심도 ‘불편’
획일화된 건물·공원 하나 없는 도심
시민들 자부심 느끼는 거리 기원
그야말로 ‘메밀꽃 필 무렵’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유수암엔 이곳저곳 메밀밭이 많아 하얗게 피어나는 메밀꽃 덕분에 가을다운 가을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제주의 가을엔 탐라문화제가 있다. 올해 56회 행사는 지난 20일부터 닷새간 제주시 탐라문화광장 일원에서 열렸다. 오프닝 참석차 차를 끌고 갔다가 주차 공간 부족으로 힘들었던 경험 때문에 심사를 부탁받은 토·일요일 이틀은 모처럼 벼르고 있었던 버스를 타고 구도심으로 가보기로 했다. 새롭게 바뀐 대중교통이 홍보만큼 편리하고 빠르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지 궁금했던 터였다.
집에서 유수암 버스정류소까지 걸어서20분 거리라 정류소 근처에 차를 주차시키자는 생각에 차를 몰고 나갔으나 마땅한 공간이 없어 결국 마을 안에 겨우 주차시켜놓고 정류소까지 3분쯤 걸어야 했다.
10여년 만에 타보는 버스라 설렘과 기대를 안고 올랐다. 생각보다 승객은 많지 않아 원하는 자리에 앉아 제주터미널에 도착했다. 또 버스를 갈아타고 동문로터리 행사장까지 너무 힘든 여정이었다. 승용차를 몰고 나갔다면 길어도 1시간이면 도착했을 곳이 버스 기다리는 시간까지 2시간이 넘게 걸리고 말았다.
새로운 대중교통 체계에 대한 시민들의 불편과 혼란이 심화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또, 장애인은 물론 임산부나 노인·어린이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대중교통 체계가 얼마나 안전하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졌다. 모니터링을 통한 다양한 개선책이 필요해 보였다.
심사가 끝나고 시간적 여유가 있어 구도심을 걸어보기로 했다. 도심 속 아기자기, 우람한 건물들, 내가 살고 있는 유수암과는 다른 풍경들, 오늘의 부족함을 걸으면서 만족으로 채워보려 했다. 그러나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도시건축의 색들을 봐야하는 불편함을 또 감수해야만 했다.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건축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시민들이 여유롭게 쉴 수 있는 도심 속 공원이 없다는 것 또한 새삼스럽기까지 했다.길은 저마다 정해진 목적지에 충실하지만, 거리는 삶의 경험이 담긴 도시의 일부분으로 도시성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목적지만이 아닌 걷고 싶은 거리, 지역 상황에 적합하며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삶과 조화를 이루는 거리 조성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원도심이 되려면 거리가 살아나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불안하고 불편한 거리가 아닌, 편안하고 안전한 도로로 가꾸어 사람들의 보행권과 삶의 질이 보장되는 걷고 싶은 도시를 그려내야 한다.
하지만 내가 걷는 거리는 그러지 못했다. 보도 위에 차량이 올라가지 못하게 설치한 대리석 볼라드도 공격적으로 다가왔다. 꼭 필요하다면 딱딱한 돌이 아니라 부드러운 고무 재질의 안전한 볼라드를 설치했으면 좋겠다. 도심 속 소소한 일상이 행복할수록 삶도 행복해질 것이다.
단순히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이 도시를 도시답게 만드는 행위는 아니다. 특히 어느 정도 도시의 골격이 갖춰진 오늘날이라면 도시를 도시답게, 디자인에 기반한 건축이 우리 자신을 배려한 건축이자 치유하기 위한 건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도시가 건강하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도시에 사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내가 이 도시에 살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면 그 도시는 건강한 도시라고 생각한다.
구도심을 2시간정도 걸으면서 묻어온 메시지가 있다. 사람이 걷기 좋은 환경이 도심 속에 만들어지려면 그에 걸맞은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보도의 돌 바닥재만 해도 그렇다. 보행자를 위해 배려된 것이 아니라는 비판과 함께 유모차로 이동하는 사람들에겐 조금의 불편함을 주었을지 모르지만 내가 걸어본 돌길은 어릴 적 울퉁불퉁 비포장 길을 걸었던 느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줘서 좋았다.
도시라는 인공적인 숲에 새로 들어선 건물들이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아주 개별적 건물들뿐이다. 모두를 위한 거리환경, 별 관심 없이 지나쳤던 건물이 편의성과 도심 생활 만족도를 얼마나 높이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건강한’ 제주시 구도심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