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환자의 ‘역지사지’
의사와 환자의 ‘역지사지’
  • 홍성직
  • 승인 2017.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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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지 바꾸어 생각하기 쉽지 않아
중환자 경험 통해 ‘깨달음’
수술 후 통증 등 어려운 환자 입장

제주대 병원 도민건강지킴이 역할
경영 우선 ‘진료’ 아쉬움
환자편의 위주 의료기관 면모 기대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이 있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여 본다는 말이다. 그러나 살다 보니 ‘실천’은 말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매일 환자를 만나는 의사도 실제 본인이 환자가 되어 보기 전에는 환자의 마음을 읽기가 쉽지 않다. 근 30년 허구한 날 환자의 배를 열고 꿰매는 수술을 하면서 수술 당일 겨우 진통제 근육주사 두어 방으로 통증을 참으라 했고, 수술 후 운동을 강조하며 환자의 몸을 흔들었던 것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일이었는지 환자가 되어 보고서야 알았다.

2년여 전 교통사고로 머리부터 발목에 이르는 30여 곳의 골절상과 함께 발견된 희귀 종양으로 ‘중환자’의 경험이 있다. 다행인 것은 심한 중증 외상으로 대학병원에 실려가 시행된 복부 CT검사 과정 중 우연히 GIST라는 희귀 종양이 발견되어 입원 중 종양 수술을 받는 행운을 누리고, 어쩌면 그 사고 ‘덕분’에 지금도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의사가 환자가 됐다고 후배 의사들로부터 특별대우를 받았음에도 수술 후 어찌나 통증이 심한지 “이렇게 아픈 줄 미리 알았다면 수술을 받지 말 걸”이라는 생각까지도 했다. 특별 배려로 강력한 진통제를 지속적으로 주입받고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제주대 의과대학 추진 당시 50만의 작은 제주인구 규모로 인해 적절한 의대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의사회에서 조차 설립 반대 의사를 표명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제주대 의대와 대학병원은 여러 측면에서 질 높은 도민 건강 지킴이로서 지대한 공헌을 하는 의료기관이 됐다.

그러나 오늘은 그 대학 병원의 엄청난 혜택을 본 당사자이면서 그리고 지금도 병원의 환자임에도 조금은 쓴 소리를 하려한다. 병원 경영을 하다보면 당연히 운영 위주의 정책을 펴기 마련일 것이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몸과 마음이 불편한 환자를 생각한다면, 적어도 국립대학병원에서만이라도 환자의 편의를 먼저 고려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임을 밝힌다.

일례로 암 치료를 받는 환자가 중간 검진 목적의 위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한다면 당연히 종양내과에서 내시경 담당 의사에게 진료 의뢰를 하면서 내시경 시행 날짜 만 조정해 환자에게 알려 주고 당일 검사만 받도록 하면 한 차례 내원으로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제주대학 병원에서는 세 차례나 내시경 담당 의사를 찾아가게 만들고 있다.

초진 환자도 아닌 환자는 종양내과 의사가 환자 의뢰서에 환자 내역과 검사를 받는 이유를 적어 보내면 끝날 일이다. 그런데 사전 진찰과 검사 후 결과 통고 명목으로 병원을 두 차례나 더 방문하게 하고 그 때마다 진료비를 받고 있는 것은 환자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경영 편의주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시경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내시경 비용에 대한 검사비용을 사전에 치르게 하면서 검사를 받으면 당연히 누구나 거치는 ‘인후마취나 위액분비억제 주사 같은’ 공통적인 사전 처치에 대한 비용을 검사비에 미리 포함시켜 계산하지 하지 않고 분리시키는 바람에, 금방 검사를 마친 환자가 또 처치 비용을 치르러 창구에 가야하는 불편을 겪게 하고 있다.

보통 한 지역 내 사립병원과 국립의과대학병원이 같이 만들어지는 경우 그 성장 속도나 질에서 사립병원이 대학병원을 쫓아 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질 좋은 인적 자원 확보와 국가의 지속적인 인프라 지원이, 자생해야 하는 사립병원과는 출발부터 그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신 국립대학병원은 ‘경영 우선’이 아닌 국민들을 위한 ‘환자 편의’ 위주의 정확하고 정직한 의료 행위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도록 공공의료기관으로서의 의무를 다 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조그만 ‘섬나라에’ 국립대학인 제주대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이 생겨난 것은 제주도와 도민에게 엄청난 축복이다. 물론 아직은 신생 의과대학과 병원으로서 개선되고 발전해야할 여지가 많이 남아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도민이자 의료인으로서 제주도가 변화하고 있는 속도만큼이나 제주대 의과대학병원도 빨리 발전하고 변모하길 기대해 본다. 양질의 의료는 기본이고 환자의 편의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병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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