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역시 출퇴근 시간 교통정체
모두 바쁘고 일상도 길어져
우리 모두 멈추어 숨고르기 필요
방문객 대다수도 마찬가지
그들 다소 불편해도 편안함 추구
이런 분위기·느낌 지켜가야
언제부턴가 제주에서도 출퇴근 시간대에는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차량 정체·교통체증 현상으로 인한 불편함이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자연히 사람들의 일상도 아침 일찍부터 늦은 밤까지 길어진 것 같다.
불과 5년여 전까지도 도심에서는 이른 아침시간대에 움직이는 사람들이래야 학생들이 고작이었고 어둠이 내리면 거리가 확연하게 한산해지던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근의 변화는 한편으론 제주에 활기를 불어넣은 듯도 하나 휴양 관광지로서 타이틀을 가진 제주의 크나큰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제주에서의 삶이 이리도 바쁘고 번거로워진 이유가 과연 어디에서 기인된 것일까 골똘히 생각해보지만 여태 이렇다 할 답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어렴풋이 우리 삶을 지탱하는 주된 산업의 구조가 바뀌어가는 탓이 아닐까 짐작해볼 뿐이다.
농사를 지어 먹고 살던 시절엔 자연의 시간을 따라 기다리고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삶을 살았다. 허나 지금 우리는 갑작스레 불어닥친 부동산 광풍에 휘말려 하늘과 자연의 시간은 아랑곳하지 않고 땅따먹기 놀음에 취하여 살게 되면서 이리도 바빠진 것은 아닐까 싶다.
수백가구가 한꺼번에 살 수 있는 아파트촌이 여기 저기서 무더기로 만들어지고 있다. 어디서건 한라산 조망권을 해치는 건물은 지을 수 없던 시절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추억이 되어 그리움 속에 잠겨 버렸다.
집에서 손수 만들어 먹고 써야 했던 식재료나 생필품들도 대형 마트에서 손쉽게 들고만 오면 되는 세상이 되었다. 비싼 요금 때문에 평생 한 두번 타볼까 말까 엄두를 내지 못했던 비행기도 이젠 고속버스나 기차처럼 자주 편리하게 타게 되었다. 편리함에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 또한 우리 삶의 가속도를 엄청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욱이 세계 어디에 있든 혹 만나고 통해야 할 사람이라면 실시간으로 서로 얼굴을 보며 소통이 가능한 휴대폰은 시공간의 의미마저 무색하게 만들어 우리를 24시간 쉼 없이 깨어 살도록 한다. 약속도 집 전화로 아침에 잡던 시절엔 만남의 단위가 ‘하루’였다면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금은 ‘분’ 단위로 급격히 짧아졌다.
나 한 사람의 바쁨으로 끝나던 일들이 지금은 우리들의 바쁨이 되어 모두를 숨 가쁘게 하고 있다. 이 시간,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리도 숨가쁜 삶을 추구하는지 잠시 멈추어 숨고르기가 필요하다.
아마도 제주를 좋아하고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어도 제주에서만큼은 ‘쉼표가 있는 삶’을 희망할 것이다. 비단 한 사람, 몇 사람의 노력만으로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아닐진대 지금부터 제주에서는 ‘바쁨 주의보’ 같은 걸 만들어 발령하면 어떨까 하는 황당한 생각을 해본다.
이런 고민을 하다가도 여전히 거리에 나서면 마음이 급해져 자연스레 자동차의 속도를 올리고, 만나고 싶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도 문자나 전화 한 통화로 간단히 해결하고 만다. 엄마의 손길 담은 따뜻하고 정겨운 밥상 대신 맛집을 찾아주고 해결하고 마는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이러고 사나 자성의 시간을 갖는 중이다.
30여 년 가까이 이웃으로 지켜본 본디 제주사람들은 비록 친절함이나 싹싹함 같은 성향은 별로 없지만 조상 대대로 이어온 조냥정신이 물려준 물질적 여유와 수눌음의 미덕에서 우러나는 정신적 여유로움에 기반한 자존감이 높은 편이었다. 그래서 과거 살길이 막막한 이웃들에겐 살 집과 농사지어 먹을 땅까지도 내어주던 시절이 있었다고 들었다. 지금은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없지만 말이다.
오늘도 제주를 찾는 많은 이들은 ‘우선 멈춤’을 통해 여유를 회복하려는 마음이 클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정신없이 살던 곳을 떠나는 이유는 편리함과 신속함이 아니라 조금 불편하더라도 편안함이 있는 시간과 장소를 찾고자 함이다.
지금 너무 바빠진 제주가 이런 분위기와 느낌을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크다. 그리 된다면 우리 주변 저개발국가 여행보다 비싼 제주를 ‘굳이’ 찾을 이유가 점점 사라지게 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