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하게 잠시 머무르다 가네요”
“삭막하게 잠시 머무르다 가네요”
  • 문정임 기자
  • 승인 2017.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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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비엔날레 14일째 ‘예술공간 이아’ 코스]
동선 안내 미흡, 휴식 공간 부족 등 관객 배려 아쉬워
제주공항 하석홍·한재준 작품, 사람 적은 국제선 배치 

▲ 예술공간 이아에서 진행중인 제주비엔날레 전시 모습. 문정임 기자

관광(tourism)을 주제로 한 제주 첫 비엔날레가 개막 14일째를 맞고 있다. 관광도시들이 겪는 원주민 소외와 환경 파괴, 지역이 흥할수록 더 외로워지는 노동자들의 삶 등 화려한 네온사인 뒤 사회 현안들을 다양한 예술적 시선으로 만나는 유익한 기회가 오는 12월 3일까지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전시 공간이 도내 전역으로 분산되면서 전시장 별 작품 수가 적고, 관객 편의 장치마저 부족해 관람이 알차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14일, 제주시 원도심 예술공간 이아(옛 제주대병원)에 마련된 제5코스에서는 정기엽, 김범준, 황루이, 장영원, 양자주, 리춘펑 등 국내·외 작가 14명의 작품이 선보이고 있다.

삼다수를 뒤집어 십자가 모양으로 배치한 뒤 붉은 조명을 설치한 정기엽의 ‘제주예수’, 개발된 도시의 풍경을 판타지처럼 공허한 존재로 바라본 김춘재의 유화 시리즈, 아시아 여러 도시들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설치 영상으로 보여주는 리춘펑(홍콩)의 ‘사라지는 가게의 집합’ 등 이 곳에서는 관광과 개발의 이면을 천착한 예술가들의 시선을 또렷이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제주 밖 국내·외 관광지들이 마주한 암울한 현실은 우리의 미래와 연결되며 관람객들에게 예술을 넘어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과 사색을 촉구한다.

하지만 이처럼 제주비엔날레가 배태한 가치와 잠재성에도 불구하고, 관람 여건은 만족스럽지 않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예술공간 이아의 경우 전시장(지하) 입구가 건물 뒤로 나있는 특이한 구조임에도 이를 알리는 이정표가 충분하지 않다. 때문에 정문으로 들어선 사람들은 전시장 입구를 찾아 헤매기 십상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에 내려가면 전시장이 있지만, 메인 입구가 아니다. 다시 사람들은 어느 지점에서부터 전시를 관람해야 할지 서성이게 된다.

이아 건물 출입구 장애인 이동통로는 주차 차량으로 막혀 있었다. 전시를 보고난 뒤에도 관객들은 쉴 곳이 없었다. 당초 예술공간 이아가 주민 및 관람객 편의시설로 쓰겠다며 만들기로 한 카페와 서점(3층)은 9월 현재까지 들어서지 않았다.

제주비엔날레가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알뜨르비행장 등 도내 여러 지역에서 진행되면서 관객들의 관람 동선이 연결되지 못 하는 가운데, 특히 전시장 분산으로 전시공간 당 작품 수가 적은 곳에서는 몇 개 작품만 관람하고 쉴 곳 없이 출구로 나서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 14일 사람들이 붐비는 제주국제공항 국내선 출발장의 모습.
▲ 반면 14일 하석홍, 한재준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국제선 3층 출발 구역은 한산한 모습이다. 

아울러 제주국제공항에 설치된 하석홍, 한재준 작가의 공동 전시는 사람들이 많은 국내선 대신, 3층 국제선 출발 장 천정에 설치돼 아쉽다는 의견이 잇따른다.

예술공간 이아에서 만난 한 남성 관람객은 “제주 여행길에 혼자 작품을 보러왔는데 전시장 안팎에 작품 외적으로 예술적 감수성을 충족시켜줄만한 시설이 부족하다”며 “비엔날레의 주요 전시장임에도 밖에서 봤을 때는 무슨 행사가 벌어지는 지 알 수 없고, 나는 삭막하게 잠시 머무르다 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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