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의 향연과 뒤숭숭한 제주비엔날레
말들의 향연과 뒤숭숭한 제주비엔날레
  • 송경호
  • 승인 2017.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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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창대 나중은 미지수
추진 10개월 만에 지난 2일 개막
시간 촉박 인정하며 강행

‘제주밀착형 비엔날레’도 물음표
가능한 문제점들 전부 노출
주도한 소수 권력이 만든 결과물

제주비엔날레가 막을 올렸다. 화려한 말들의 향연이 시작된 지 10개월 쯤 됐다. 물론 시작은 창대했다. 하나, ‘나중’은 뒤숭숭할 뿐 미지수다.

간극은 공간과 예술권력, 돈의 문제에서 온다. 시작은 이들의 말과 글이 이끈 ‘수사(修辭)’의 공간, ‘나중’은 이들이 베푼 실체적 사물의 영토다.

시작은 자본과 예술권력, 즉 베푸는 자들의 몫이되 ’나중‘은 그들이 지칭하는 ‘여러분’들의 것이다. ‘여러분’은 말 그대로 여러 분들이다. 도민이거나 작가들, 뭍을 떠나 제주로 향한 관광객이기도 할 것이다.

시작과 나중의 분절은 베푸는 자들의 수사와 그에 담긴 욕망이 ‘여러분’에게 좀체 먹힐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정치 또는 예술권력자들의 욕망은 겨우 10개월 새 발아될 수 없는 씨앗 같은 것. 허다한 말의 성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많은 물음표들이 비엔날레 주변을 떠도는 건 결코 ‘여러분’들 탓이 아니다.

이쯤에서 베푸는 자들이 그간 내놓았던 말들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겠다. 여러 말들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지난 4월 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장이 언론간담회 자리에서 한 이야기다.

“중대한 사업 추진을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니냐”는 언론인들의 잇단 질문에 김 관장은 “시간이 촉박하다는 지적에 100% 인정한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상식적으로는 앞뒤가 안 맞는다. 촉박하다면 돌아가는 게 ‘여러분’들의 지혜다. 하지만 예술의 이름으로, ‘경험과 노하우 축적’을 위해 거룩한 과업을 미룰 수 없다는 거다.

김 관장은 또 “이번 비엔날레는 국제미술전시 경험이 없는 도립미술관이 경험을 쌓는 기회이자 역량을 키우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가 주도하는 비엔날레가 아니”라는 거다.

그러나 말은 말 뿐, 현실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비엔날레는 뭍에서 온 ‘임기제 전문가’인 김 관장과 예술감독 책임과 주도 아래 치러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경험의 축적은 결국 사람에서 비롯된다. 아울러 시스템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그렇다면 김 관장의 포부인 경험의 축적은 과연 어디에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4월 부임한 김지연 예술감독의 포부 역시 우아했다. 제주비엔날레에 대해 “제주도 현실을 진단하고 비전을 공유하는 장이 될 것”이라 했다. 핵심 취지 역시 “예술의 사회적 책임을 다 하는 제주밀착형 비엔날레를 일궈내는 것”이라 정의했다. 거의 모든 비엔날레에 적용되는 모범답안이다. 무릇 비엔날레들은 그리 되어야 한다.

하나, 범용성 좋은 ‘레토릭’이라도 아무 현장에나 들어맞는 건 아니다. 특히 비엔날레 개막 5개월 앞두고 취임한 감독이 그 짧은 시간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다. 실무 과업 수행조차 촉박한 게 현실이다.

그런 터에 감독은 ‘제주 현실’을 얼마나 진단했는지, 제주에서 ‘예술의 사회적 책임’은 또 어떠해야 했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 ‘제주밀착형 비엔날레’라는 게 대체 어디에서 이뤄진 건지도 의문이다.

어쨌거나 비엔날레는 지난 2일 막을 올렸다. 준비는 끝나지 않았지만 시간에 떠밀려 올렸다. 막이 오르자 이런저런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준비 부족·홍보 부실 혹은 차별, 작품 수준·전시기법·도민 외면 혹은 그들만의 리그, 소통 부족·미숙한 행정·부실한 작가 지원 시스템 등등 나올 만 한 건 다 나오고 있다. 개막 하루 전 둘러본 필자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 이런 상황은 이미 지난해 말 ‘제주비엔날레의 2017년 개최’라는 이슈가 제기되자마자 예측됐다. 제주의 수많은 관계자들은 크게 우려했으며, 더러 천천히 가자고 했다.

그러나 이를 주도한 소수 권력자들은 온갖 언설로 밀어붙였다. 권력과 말은 한번 작동된 비엔날레를 멈추지 않았으며, 결국 오늘날의 결과물을 낳았다.

그들이 낳은 그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이른바 ‘전문가’ 아닌 ‘여러분’들의 몫이다. 제주도민과 제주를 찾는 이들이 이를 어떻게 평가할지, 아니면 아예 외면할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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