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광고의 역사는 3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이집트의 상인들은 진귀한 상품을 적재한 상선이 도착하면, 그 품명을 외치고 다니는 방법으로 광고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폼페이 시의 유적에도 벽에 아로새긴 서어커스 광고의 그림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광고는 19세기에 인쇄술, 사진술의 고도한 성장과 영화의 발달에 힘입어 급성장하였다. 오늘날은 각종 미디어가 시시각각으로 대량의 정보를 전달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광고가 많은 양을 차지한다.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광고에 전력을 기울인다. 미국의 어떤 편집인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광고 없이 사업을 하는 것은 어둠 속에서 처녀에게 윙크하는 것과 같다.”
이제 광고는 더 이상 우리 생활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사실 광고는 상품의 선전 이상으로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때로는 나날이 변천하는 현실에 바르게 적응하면서, 낙오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높은 예술성을 지닌 광고들도 많이 등장하고, 광고 보는 재미에 산다고 우스갯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상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일깨우는 것이 광고의 주된 기능이다. 그리고 손거울은 나의 얼굴을 비쳐 주지만 광고라는 거울은 생활인 전체의 나날을 그대로 반영한다.
오늘날 우리 생활에서 광고를 제거한다면, 마치 허허벌판에 홀로 버려져 헤매는 떠돌이처럼 방향을 잃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광고는 시시각각으로 우리의 삶을 좌우한다. “우리들이 호흡하며 살고 있는 이 대기는 산소와 질소 그리고 광고로 이루어져 있다.”(로벨게랑)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정신이 흐트러지면, 광고는 거대한 힘으로 우리를 속박하거나, 날름거리는 뱀의 혓바닥처럼 우리를 유혹한다. 그 유혹은 마치 거미줄같은 예민한 촉감을 가지고 날아다니는 나비를 동여매서 죽음의 심연으로 끌어간다. 용암처럼 솟아나는 유혹의 마력은 그 올가미에 걸려드는 대상으로 하여금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하는 놀라운 기술을 갖고 있다.
그래서 허위, 과대 광고에 속아 곤경을 치르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허위 선전의 유혹에 이끌리어 막대한 재산의 피해는 물론, 건강과 심지어는 생명마저도 손상당하는 일이 일어나는 보도를 접하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광고에 등장하는 엽기적인 화면이나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문구는 우리의 정신을 황폐하게 한다. “차고 비틀고 꺾어라” - 어떤 상품을 선전하는 이 폭력적 언어의 문구는 정신의 피해를 넘어서서 사회악을 조장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우리는 촌시라도 광고라는 대기를 벗어나서 살 수 없다.
도시는 나비를 유혹하는 꽃판처럼 메트로폴리탄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교태를 부리는 간판들로 가득 차 있다.
각종 인쇄 매체와 전파 매체들도 광고로 범벅이 되어 있다. 특히 최근에 고도로 발달한 전달 매체인 인터넷 또한 예외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필수품으로 사용하고 있는 휴대 전화에도 쉴새없이 광고 메시지가 전달된다.
치열한 선전 경쟁으로 불꽃을 튀기는 전장의 한 복판에 우리는 놓여 있다.
이러한 도전과 유혹의 소용돌이 속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아가는 슬기를 추슬러야 될 때인 것 같다. 그리하여 모든 부정적인 요소를 달고 유익한 생활의 영양소로 소화시키는 방법을 깨우쳐야 될 것이다.
김 영 환 (전 오현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