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선 65세면 ‘지공거사’ 반열
현실과 맞지 않은 노인 기준
평균 수명도 60에서 81세로 늘어
유엔은 ‘청년 16~65세’로 규정
우리나라 ‘실제 42세’에 은퇴하는 셈
현실 반영한 노인정책 있어야
며칠 전 서울에 갔었다. 서울에 사는 누님과 지하철을 탔는데 누님은 “지하철 요금이 공짜”라고 좋아하신다. 소위 말하는 ‘지공거사’ 반열에 오르신 것이다. 지공거사는 무슨 거창한 지위가 아니라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사람’을 폼 나게 부르는 호칭이다.
그래서 나도 공짜표를 누님에게 빌려서 사용하려고 하니까 누님 말이 “지하철에서 노인용 무료표를 가지고 도용하는 사람들을 검색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누님은 자신이 워낙 ‘동안(童顔)’이라서 자주 검문을 당한다고 한다. 결국 동생에게 도움은 되지 않고 자기 얼굴 자랑만 한 셈이다.
이제 국가에서도 노인의 개념을 65세에서 70세로 ‘상향 조정’을 고려하고 있다. 그리고 오는 26일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제주도대중교통체계 개선에 따른 공영버스제도에는 70세 이상 노인들에게만 무료 승차를 허용할 방침이라고 한다.
64세의 나는 ‘억울’하다. 세금 열심히 내고 65세 되면 ‘공짜표’ 받고 싶었는데 65세를 눈 앞에 두니 이번에는 공짜표 하한선을 70세로 올린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영화관에서는 65세를 기준으로 할인해 준다.
국가나 지방행정 기관들이 노인의 하한 연령을 올리려는 이유는 노인인구가 증가하여 국가적이나 사회적으로 부담이 발생하는 것도 있지만 실제로 노인들의 건강 상태가 좋아져서 과거의 생물학적 나이가 의학적 나이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5년 유엔은 이러한 차이를 정리하기 위해 새로운 연령표를 발표했다. 유엔은 이를 통해 0세부터 17세까지는 미성년, 18세에서 65세까지 청년, 66세에서 79세 까지는 중년, 80세에서 99세까지는 노년, 그리고 100세 이상은 장수세대라고 규정했다.
유엔의 기준에서 보면 나는 청년이다. 그런데 실제로 직장에서는 ‘뒷방늙은이’ 취급을 한다. 지난해까지는 직장 내에 ‘큰’ 보직이 있었는데 이제는 ‘기본’ 보직 밖에 주지 않는다. 편하게 지내시라고 한 조치라고 생각되지만 일면 섭섭함이 밀려온다.
동창회에 나가면 이제는 상석만 권하는 통에 좌불안석이 되어서 잘 나가지 않게 된다. 유엔에서 정한 2015년 연령표를 굳이 들이대지 않더라도 ‘아직도 생각은 청년이고 일 하는데 과거와 차이가 없는데’ 자꾸 사회에서는 노인으로 ‘대접’ 또는 ‘취급’ 하는지 답답할 때가 많다.
이달 16일 대정읍 신도2리 해안에서 열린 ‘하멜 일행 난파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 행사에 갔을 때다. 단상에 오르는 분들이 전부 70대 전·후반, 전부 나이 드신 분들이 큰 행사를 주관하고 있었다.
요즘 마을의 모든 일들이 ‘과거의’ 노인들이 하고 있다. 이렇게 노인들이 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오히려 일을 더 잘하는 것 같다. 하멜표류추모비 행사 역시 오차 없이 매끄럽게 잘 마무리됐다. 과거에 여러 번 행사에 참석하고 주최한 경험들이 있었기에 행사 진행이 더욱 더 깔끔했다.
지난번 서울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가서 지인의 아버님을 뵙게 됐다. 나이가 90이 넘으셨는데도 2시간짜리 음악회를 자세 흔들림 없이 앉으셔서 다 들으시고 막간에도 계속 서서 기다리시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오히려 내가 힘들게 보이셨는지 자꾸 자리에 앉으라고 하여 민망했다.
이렇게 ‘노인=65세부터’라는 기준이 현실에는 전혀 맞지 않고 의학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의학적으로 자기 나이에 0.7를 곱해야 생물학적·정신적·사회적 나이가 나온다는 이론이 있다. 60세도 ‘실제’로는 42세라는 말이다.
우리나라 은퇴 나이가 42세가 되는 것이다. 한창 일 할 나이다. 우리나라 젊은 연령층이 적어져서 역삼각형 인구 분포를 보임에 따라 국가 경제력 저하에 대한 우려가 크다. 걱정만 할 게 아니라 실제로 42세 청년인데 일감을 주지 않는 사회구조부터 고쳐야 한다.
한국의 평균 수명이 60대일 때 책정한 30년 전 인구통계를 가지고 하는 사회정책들은 평균 수명이 81세로 늘어난 지금과는 너무 괴리가 커서 맞을 수가 없다. 사회 현실과 의학적 나이에 맞춰 노동인구 계획을 다시 짤 때가 왔다. 정부의 노인정책에 바람직한 변화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