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공직윤리
실종된 공직윤리
  • 김은석
  • 승인 2017.0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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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힘든 제주도정 하반기 인사
특징은 ‘58년생 고위직 용퇴’
아직 정년 1년 이상 남은 사람들

공로연수·기관 파견으로 ‘일선 후퇴’
사실상 일 없는 데 급여 지급
‘꿈쩍 않는’ 도의회도 기능 상실

 

스티브 잡스는 말한다. “나는 지난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 앞에 서서 나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 한다면 오늘 하려고 마음먹었던 일을 계속하고 싶은가?” 진정 프로다운 직업윤리이다.

이번 제주도정 하반기 인사를 보면서 스티브 잡스가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마치 그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공직자의 길을 걷지 않겠다”는 의지로 다가섰기 때문이다.

물론 인사권자가 한 일을 놓고 일개 서생(書生)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성현들이 말했듯이 목민관에게는 민(民)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살피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뜻을 가감 없이 전달할 수밖에 없다.

언론에 따르면 이번 인사의 주요 내용의 하나가 ‘58년생 고위공무원들의 일선 용퇴’라고 한다. 그런데 1958년생이라면 아직도 1년 내지 1년 반의 정년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한 언론의 표현을 빌자면 도지사는 왜 ‘반강제적’으로 그들을 일선에서 후퇴시킨 것일까? 나이가 들어 업무능력이 떨어져서 일까? 나이 문제라면 차라리 지사는 앞장서서 공무원 정년 단축을 위해 노력을 해야 옳다.

그것이 아니라면 사회 적응을 하도록 조직원에 대한 배려 때문인가? 그것은 지사가 할 일이 아니다. 공무원이란 국민으로부터 부름 받은 공복이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지사는 퇴임 전날까지 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책무를 다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도리다.

다산(茶山)은 ‘경세유표’에서 당시 털끝 하나 병들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말로 목민관들의 실종된 직업윤리를 개탄했다. 사실 공로연수든, 다른 기관 파견을 통한 일선후퇴든 병가 상태가 아닌 이상 ‘사실상 하는 일이 없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나라의 녹을 주는 곳이 또 있을까?

공직윤리의 실종은 도지사뿐만 아니라 용퇴 당사자들에게도 없지 않아 보인다. 한 언론에 따르면 최고위직 어느 공무원은 “일찌감치 일선 후퇴를 결심했다”며 “1년 6개월 동안… 민선 6기 도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고, 후배들을 위해서 물러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직윤리’가 후배의 승진 길을 터주는 데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분명 용퇴이고, 자기희생이다.

그러나 거칠게 표현하면 이것은 일선 현장에서 땀 흘리는 많은 공직자와 도민들에 대한 모독일 따름이다. 다산이 다른 벼슬은 취해도 좋으나 목민의 벼슬만큼은 취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공직이란 민을 바라보는 자리다. 벼슬 취하라고 맡긴 자리가 아니다. 후배의 승진을 위해 물러난다는 말은 공직을 조직의 밥그릇 챙기는 쯤으로 폄훼한 것이다. 공직은 오히려 민의 밥그릇을 살펴야 하는 자리다. 그것이 자기희생이다.

그렇다면 조직을 위해 용퇴를 자랑스럽게 말하고, 승진을 자기능력의 징표로 삼는 조직, 이런 곳에서 인사권자는 권력을 남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가는 따른다. 민심이 떠난다.

우리들 삶에는 두려운 것, 즉 경외의 대상이 필요하다. 그것이 꼭 절대자가 아니어도 좋다. 인간의 오만을 질타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그런 의미에서 올바른 공직윤리는 민에 대한 두려울 ‘외(畏)’ 한 글자뿐이다. 두렵지 않으면 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신뢰가 없는 사회는 바르게 서지 못한다(無信不立).

이번 인사에 대해 도민들의 쓴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어째서 도의회는 꿈쩍도 않는 것일까? 그들도 이제 일할만큼 했으니 일선후퇴를 희망해서 일까? 그러면 다행이다. 민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민의의 전당은 엄밀한 의미에서 기능 자체를 상실한 상태다.

옛 말에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고 했다. 만일 맹자가 이번 하반기 인사를 보면서 뭐라고 말할까? “너희들 창랑지수(滄浪之水)란 노래를 듣지 않았는가? 왜 어떤 물에는 깨끗한 갓끈이 들어오고, 어떤 물에는 불결한 발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물, 너 자신이 자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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