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론조사 민의 반영’ 여부 계속 논란
진짜 도민의견 도출위한 대안 절실
최근 제주지역의 최대 이슈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선거구 획정’이다. 대의민주주의 하에서는 자신을 대표하여 정치적 결정을 내릴 대표자, 즉 ‘의원’을 선출한다.
이러한 대의민주주의에서 선거구는 1명의 의원이 몇 명의 주민을 대표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3만5000명의 A선거구와 1만명의 B 선거구가 있을 경우, 주민 1명이 행사하는 1표의 가치는 ‘3만5000명 분의 1’ 대 ‘1만명 분의 1’이 되기 때문에 3.5배 차이가 난다. 따라서 1표의 가치를 되도록 동등하게, 최대 4:1을 넘지 않도록 법적으로 정해 놓고 있다.
제주는 최근 인구의 급증으로 41명의 도의원 가운데 지역구 선출직인 29명의 선거구에서 2개를 조정해야 하는 ‘선거구 획정’ 문제에 직면해 있다. 현재의 29개의 선거구 내에서 조정해야 하는가, 아니면 2개를 늘려 31개로 해야 하는 것인가를 선택하는데 있어 여러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
필자가 최근의 ‘선거구 획정’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함께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은 선거구를 늘여야 하는지, 유지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은 아니다. 무엇이 바람직한 대안인지를 판단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는 ‘여론조사’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선거구 획정과 관련된 도민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차례 여론조사가 실시됐다. 그러나 ‘기대와 다르게 나타난’ 결과를 두고 의원 증원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사전 설명이 부족한 설문문항, 폐지·축소 등 용어의 어감 차이 등을 거론하면서, 여론조사 결과를 불신하는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또 다시 도민의 뜻을 확인하기 위한 여론조사의 재실시를 언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언제까지 이러한 여론조사를 반복해야 할 것인가. 여론조사의 결과가 도민의 진실된 뜻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묻고자 하는 바에 대한 정확하고 심도 있는 정보가 제공되고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대안은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응답자가 이해하고 토론한 후 답변하는 진짜 ‘의견’을 숙의민주주의에서 추구하는 것이다.
숙의는 익을 숙(熟,) 의논할 의(議)자를 쓴다. 말 그대로 ‘깊게 생각하고 토론하는 것’을 말한다. 숙의민주주의의 방법론에는 타운미팅·원탁회의·공론조사·시민배심원제·합의회의 등이 있다.
여러 방법론이 있지만, 모두 최종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관련 정보를 수집해 충분히 검토하고 참여자들의 토론을 통해 의논하는 과정을 꼭 거쳐야 한다. 일반 여론조사가 ‘찬성’, ‘반대’만 묻는다면, 숙의민주주의 방법론인 공론조사는 찬성의 견해와 반대의 견해를 모두 충분히 듣고 토론하여 결정한다. 선거구 획정이 어떤 이유에서 실시되는 것인지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 견해를 묻는다면 잘 모르는 상태에서의 대답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도출된다.
제주는 앞으로 여러 번 ‘도민의 뜻’을 알아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문재인 정부는 제주를 연방제 수준의 분권시범모델로 만들 계획인 바, 제주만의 선도적인 제도를 설계할 때 도민의 뜻은 그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에서 신고리 5·6호기 원전을 계속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방법으로 숙의민주주의 방법론의 하나인 시민배심원단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는 시민들이 참여해서 정책을 결정하는 사례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제주에서 선도적으로 숙의민주주의에 입각하여, 주민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그 뜻에 맞게 직접 결정하는 정책결정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에 본 의원은 지난 6월 워크숍을 시작으로 이와 관련된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본 조례를 기초로 새로운 형태, 즉 숙의민주주의에 기반한 주민 참여가 실현되는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