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끊임없이 결심과 계획
주변 환경·나이 변화 따라 새 각오
100세 시대 ‘50대에 할 일’ 정리
재산·자산 없어 자연과 함께 ‘행복’
1년 전·후반 나눈 계획도 바람직
기간 짧아 실현 가능성 높아
인간은 끊임없이 계획을 세우고 결심을 하며 후회하고 반성하며 살아간다. 한 해가 시작되며 세우는 연례적인 계획과 결심 외에 특별한 시점에 세우는 계획은 좀 더 거창하기 마련이다. 가령 결혼을 한다거나 아이를 낳거나 혹은 주변에 가까웠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거나 하는 커다란 환경의 변화를 맞으면 새로운 각오를 다지곤 한다.
그런가하면 나이 30이 돼서 또는 50대에 접어들면서 세우는 계획도 있다. 그래서 ‘50대에 꼭 해야 할 100가지’라는 책도 서점에 나올 정도다. 50대인 필자도 호기심이 생겨 50대가 아닌 척 주위의 눈치를 보며 살짝 들쳐봤었다. 목차를 보니 100세 인생을 겨냥해 50세를 인생의 후반전으로 인식하고 계획을 세워 잘 먹고 잘사는 방법을 나열한 것 같았다. 재테크와 자산관리·인간관계, 그리고 건강에 관한 요령과 지침이 주 내용인데 나와 해당되는 분야가 별로 없어서 얼른 덮었었다.
50 넘도록 직업은 있으나 직장은 없는 비정규직으로 살아온 처지라 재테크할 재산이 없다. 자산은 식구들 모여 먹고 자는 집 한 칸 있는데 그것도 마누라와 공동명의이니 딱히 관리할 것도 없다.
그래도 남들은 해야 할 일을 100가지나 정하는데 10가지는 정해야 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몇 가지 적어봤다. 우선 산을 좋아하니 ‘백두대간종주’ ‘자전거 타고 전국투어’ ‘히말라야 등반’ … 적다보니 맨 놀러 다니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걸 발견하곤 양심상 일에 대한 계획도 그럴듯하게 첨가했다. 아무튼 일은 줄곧 반복해왔던 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들에 대한 도전을 주로 시도하기로 정하곤 대견하고 뿌듯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계획을 세우고 결심을 한지 세월이 훌쩍 흘러 50대의 절반을 넘겼으니 이쯤에서 중간 결산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우선 새로 도전하기로 한 일들은 아직 결실을 맺지 못했지만 설레는 증상으로 봐선 계속 추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겁 없이 시작했던 백두대간종주는 동반자를 못 구해 주로 단독산행을 하며 5년째 입산과 하산을 거듭하며 간간히 전진하여 올해 안에는 마칠 수 있을 것 같다. 자전거 투어는 탈수록 재미가 쏠쏠해지고 있다.
인적 없는 깊은 산속 능선을 따라 걸으며 바라보는 산야와 바람 가르며 달리다 만나는 물길 꽃길의 감동은 그 어떤 재테크보다 배당이 큰 행복으로 다가오고 평생 쓰고 남을 자산이 될 것 같다. 가끔 동행하는 벗과 맛난 음식은 충분한 이자로 나눠 쓰기에 충만하다.
이제 여름휴가를 마치고 학교로, 일터로 복귀하여 결실을 향해 가는 시기다. 인생을 100세로 예정하고 50세를 후반전의 시작으로 정하는 것도 의욕에 찬 일이겠지만, 좀 막연하기도 하고 그리 오래 살 자신도 없으므로 한 해를 전·후반으로 나누어 계획하고 실현해보는 ‘단기투자’도 괜찮을 듯싶다.
일단 기간이 짧아 게으름을 줄일 수 있고 계획이 구체적이어서 실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단기투자라 손실의 피해도 적은 편이다.
후반전 휘슬이 울리기 전에 라커룸에서 전반전을 분석하고 후반전을 대비한 작전을 짜는 시간이 여름휴가다. 전반전에 너무 무리했으면 페이스 조절을 하고 후반전에 만회를 해야 한다면 결의를 다지고 그라운드에 나가자.
쉽지 않은 경기가 되겠지만 너무 걱정 말자. 50이 넘으면 상대 선수는 별로 겁나지 않다. 이제 그 상대는 내 자신임을 알았고, 후반전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지난주에 새로 명함을 만들었다. 물론 고정된 직장은 없어도 얼굴이 명함인 연예인도 아니고 남들한테 받기만하는 것도 실례인 것 같아 디자인을 전공하는 아들에게 부탁해 새로 박았다.
이름과 전화번호·이메일 주소를 적고나서 정해진 직책이 없어 “지금은 OOO 입니다”라고 적었다. 빈칸엔 그때그때 하는 일을 적어 넣기로 했다. 요즘은 원고 탈고가 있어서 “지금은 나름 작가 입니다” 라고 쓰고 있다.
다음달에는 “지금은 산악인 입니다”라고 쓸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후반전의 시작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오늘 네팔 행 비행기표를 끊어버렸다. “인생 뭐 있어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