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제주도 목마장의 변천(5)(濟州道 牧馬場 變遷)
■ 8소장과 한라장축
① 위치
조선시대 대정현에 속해있던 8소장은 현재 서귀포시이고 색달천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해발 396m의 고근산으로 이어지는 하잣이며 대정현과 정의현의 경계였다.
북쪽으로는 해발 501m의 모라이오름과 해발 670~743m의 두 봉우리로 된 녹하지오름과 거린사슴오름, 동남쪽에 탐라대학이 있으며 골프장과 과수원이 많이 있는 곳이다.
한라장촉에서 보면 대정현과 정의현의 경계는 법한포(法閑浦)와 색수(塞水) 중간에 붉은색으로 직선이 그어져 있다.
② 목장실태
제주삼읍지, 탐라지초본, 탐라고사의 목장도형에 의하면 말 192~362필, 마감·군두·목자 12~18명이고 색달천의 동성지는 7소장과 연계된 것으로 보아 수처(못)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마을에서 목장으로 통하는 도(梁)인 문 법화양(門法華梁)이 있어서 고려시대부터 있는 사찰로 행객이 머무르는 원(院)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랫마을 이름이 하원리(下院里)가 된 것이다.
목장의 중심인 전마청이 하원 법화사 북쪽에 7·8소장의 둔마를 낙인과 점마했던 곳(전마청과 피우설가)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근에 염둔마을(羔屯村)은 지금의 용흥동 속칭 염돈마을 운낭천부근의 염돈과원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원진의 탐라지에 의하면 이곳은 조선시대 세종때 한라산을 중심으로 하잣(城)을 쌓도록 건의한 고득종(제주도 교래리 출신으로 한성부판윤를 지냄)의 별장이 있었다고 하며, 동해촌은 지금의 회수동에 해당하며 동해방호소가 있었던 곳이다. 월평동에 있는 목지동산은 공마(貢馬)할 말을 선발하여 길렀던 곳이다.
한라장촉에 그려진 黃·玄字場은 서귀포 인근에 있는 목장으로 서귀조점에서 점마하므로 대정현감이 참여한 것으로 생각된다.
숙종28년(1702) 4월15일에 이 형상목사가 제작한 지도 이다.
당시 제주도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과 주변 도서(島嶼)와 삼읍의 경계가 시대에 따라 변동됨을 알 수 있다. 제주목과 대정현은 두모포, 대정현과 정의현의 경우 법한포, 제주목과 정의현은 용강포가 그 경계가 된다. 삼읍관아(三邑官衙)의 위치와 9진(鎭)의 위치가 적색으로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 지도에서 특징적인 점은 중산간지대에 설치되어 있었던 목마장의 울타리인 하잣을 점선(點線)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탐라지도병서(1709), 해동지도의 제주삼현도(1770년대), 제주삼읍도총지도(1770년대), 제주삼읍전도(1872) 전라남북지도의 탐라지도에서는 중산간지대를 1소장부터 10소장과 산장으로, 여기에서는 소장(所場) 5곳( 2소, 대2소, 대3소, 목1소, 목3소), 목장 5곳( 별목장, 좌장,산장, 침장, 원둔장) 자장(字場)8곳(黃,玄, 宇, 日, 別玄, 辰, 黃 등)표시되어 있다.
제주도의 목장을 세분한 것은 효종4년(1653) 이원진목사의 탐라지에 11장 58자장 1703년 이형상목사의 남환박물 10소 63자장 보아 50년간 지속되었으나 난립되고 부실한 목장 합쳐 숙종 30년 (1704) 송 정규목사가 10소장으로 다시 정비 하여 조선 말까지 존속되었다.
이곳은 국영목장(국장)이 폐지되면서 온화한 기후로 농경지로 활용되었고 1970년대 이후 감귤원이 하잣 북쪽까지 이어져 목장 용지는 점점 감소해 갔다.
현재 제주시·북제주군보다 목장수는 적으나 초원목장에 제주마 70여 필과 더러브렛(Thoroughbred)종 21필을 사육하고 있으며 도순공동목장 등 6개 목장에서 말과 소를 기르고 있다.
서귀포시 쓰레기위생매립장 동쪽에는 제주산마 50여필과 더러브렛(Thoroug hbred)종 40여 필을 사육하는 성실목장이 있다.
(9소장에서 계속)
장 덕 지 교수
제주산업정보대학 애완동물관리과(제주마문화연구소장ㆍ제주도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