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정착 5년차 A작가
나름 자리 잡았으나 문제 봉착
빌려 살던 집 비워줘야 할 판
졸지에 갈 곳 없는 신세
비슷한 처지 이주 예술인 수두룩
‘지역의 자산’ 인식 지원책 절실
A작가가 제주에 발 들인 건 2013년. 어느덧 제주도민 5년차다. 아내와 두 아이 함께 제주로 이주했다. 제주시 서쪽 수산리에 100년 된 돌집을 빌어 지금까지 살고 있다.
작가는 업-사이클링 아트(up-cycling art)가 업(業)이다. 바다로부터 얻은, 버려진 모든 것들이 창작 소재다. 매년 몇 차례 개인전과 초대전도 연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교육과 워크숍 등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덕분에 제주는 물론 국내외에도 이름깨나 알려져 있다. 이 정도면 제법 자리 잡았다 싶었다.
한데, A작가 요즘 시름이 깊다. 그동안 잘 써왔던 집을 비워줘야 할 처지기 때문이다. 2년씩 두 차례 ‘깔세’로 써왔는데, 집 주인이 또 한 차례 쓰게 해 준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A작가에게 집은 곧 작업장이자 창고며 워크숍장이고 전시 공간이다. 집안 곳곳에는 바닷가에서 주워 온 나무와 쇳덩이·플라스틱 조각·헤진 그물·유리병 등 잡동사니가 그득하다. 마당부터 지붕까지 거의 모든 공간에는 작가가 빚어낸 오만 가지 작품이 가장 편한 자세로 자리 잡고 있다. 하나같이 바다에 버려졌다가 다시 살아난 것들이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든, 가치가 어떠하든 나가라면 나가야 한다. 4년 새 꾸며 놓은 ‘자식 같은 것’들은 원상복구를 명분으로 철거돼야 한다. 피할 수 없으며, 대안도 없다.
심지어 철거하고 나가더라도 갈 곳이 없다. 제주로 이주하며 가져온 쌈짓돈은 바닥 난 지 오래다. 하늘이 무너져도 보인다는 ‘솟아날 구멍’은 없을 것이다. 결국 제주를 떠야 하는 것인지, 이래저래 시름 깊은 나날이다.
B작가의 처지 또한 A작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잘 나가는 카투니스트에 화가·사진작가·저술가로 이른바 ‘중앙무대’에서 놀던 생활을 돌연 접고 홀로 제주에 깃든 건 지난해 2월. 하나 제주에서의 지난 1년은 남의 집 짓는 일로 보냈다.
이른바 ‘노가다’다. 딱히 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 터, 재주보다는 온 몸뚱이를 부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었다. 사실 달리 할 일도 없었다. 실제, 집짓기가 끝나니 작가 앞의 시간은 텅 빈 상태다. 홀로 도 닦는 심정으로 읽고 쓰고 그리고 찍지만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버겁다. 독야청청도 한 때지 마냥 그럴 순 없는 일이다.
그렇게 세월 보내다보니 어느새 공짜로 빌려 쓰고 있는 집을 비워 줄 때가 닥쳐오고 있다. 9억 평 제주 땅에 제 한 몸 누울 몇 평 공간조차 구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마음과 몸이 무겁다.
어디 A작가와 B작가뿐일까. 비슷한 처지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제주 도처에서 떠돌고 있다. 가진 것이라곤 뜨거운 열정과 재능 뿐, 세상 어느 곳이고 ‘머리 둘 곳’ 없는 이들이다. 치열하고 분주하게 돌아가는 도시에 지쳐 제주를 찾았지만 형편은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가진 것 없는 자가 맘 편히 발붙이기 힘든 건 제주라고 예외가 아니다.
이들의 내일은 어떻게 될까? 별 다른 변화가 없는 한 부초(浮草)처럼 떠돌 것이다. 더러 창작보다는 돈벌이에 집중할 수도 있겠다.
창작에 집중한다 하더라도 ‘잘 팔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겠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결국 제주를 떠나기도 할 것이다. 그 어느 쪽이든 개인의 문제이며,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이른바 ‘각자도생’의 시대에서 예술가라고 다를 것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마냥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제주를 찾는 이들 예술가가 곧 제주의 자산이자 자랑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제주에 몰리면서 제주의 문화예술 자산은 크게 늘었다. 천혜의 수려한 풍광과 어우러지는 다양하고 풍요로운 문화예술 활동은 제주 고유의 가치를 크게 높이고 있다. 제주도 역시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지만 여전히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관련 기관은 현장에 좀 더 귀를 열고 이주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을 크게 늘려야 한다. 많은 사업도 좋지만, 시급하고 중요한 사업에 집중했으면 한다. ‘육지’의 관련기관들이 하는 사업보다는, 지금 제주가, 제주의 예술인들이 필요로 하는 사업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