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정부 개혁 목소리 봇물
대상 ‘재벌·검찰’ 등 모두들 거창
서민 생활 주변 작은 것들 묻혀
정부 개각서도 ‘전국 1%’ 홀대
제주 나름의 존재 이유와 삶
‘정량적’ 평가 불가한 ‘절대적’ 가치
요즘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개혁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주문하자는 목소리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기왕 나오는 김에 대학도 철저한 개혁의 대상이 되었으면 한다.
신자유주의 기류에 편승하여 그동안 전통적인 대학의 이념이나 설립 목적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요즘 대학은 오직 물적 생산의 극대화와 이윤창출을 위한 시장에 다름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대학은 바람직한 인재 양성이라는 이념은 사치일 뿐 오직 잘 팔리는 제품만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전락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대학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단 1명이라도 취직 시켜야 될 판에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리얼리스트가 되라. 그렇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 한다”.
현실을 외면한 개혁은 이룰 수 없는 꿈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현실 벽에 부딪혀 본래 추구하고자 했던 이상을 포기한다면 또 다른 권력의지를 쫓는 리얼리스트에 다름 아니라는 말이다.
이상주의적 리얼리스트의 입장에서 한 가지만 피력하고자 한다.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겠다고 출발한 새 정부는 특히 작은 것에도 눈길을 돌렸으면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요즘 나오는 내용들은 재벌이나 검찰개혁 등 온통 거창한 내용들이다.
이들에 대한 논의 때문에 상대적으로 서민의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이야기들이 묻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국제사회의 경쟁체제에 노출된 우리 민족 앞에 경제지표를 끌어 올리고 실업률을 낮추어야 하는 상황에서 작은 이야기들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직접적이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작은 이야기들이 무시해도 좋을 만큼 정말 보잘 것 없는 것인가? 인간중심의 경제학을 표방한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E.F. Schmacher)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책을 쓴 적이 있다. 이 제목은 오늘날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명언이 되고 있다.
중국이나 미국 등을 여행할 때 우리는 대부분 그들 문화의 엄청난 규모에 놀라곤 한다. 사실 그렇다. 중국 황제가 기거하던 자금성에 비하면, 우리의 경복궁은 너무 왜소하다. 만리장성의 거대한 위용 앞에 우리 제주도의 환해장성은 비교 자체가 무리이다.
작다고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중국 상해는 해발고도는 20m 정도이다. 넓은 광활한 평탄대지에 지배자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우뚝 솟은 모습이 제격이다. 그것이 절대 권력을 신성시하고 황제를 신적 존재로 꾸미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산악 국가이다. 주변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아무리 높게 쌓아 본 들 산보다 높을 수는 없다. 그래서 높게 쌓아 올린 탑보다는 산세에 어울리는 조형미를 갖춘 3층탑·5층탑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는 큰 것만이 주목을 끌고 있다. 소형차 대신 중형차가 잘 팔리고, 고층 아파트가 선호되는 경향들이 그렇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작은 목소리,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가 주목받지 못하게 되었다.
최근 정부의 개각 발표를 보면서 전국의 1%밖에 안 되는 제주도가 홀대받는다는 불만이 있는 것도 이런 풍토에서는 당연한 일인 것 같다. 정치·경제적 시각에서 볼 때 인구 100만도 안 되는 제주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정치적 역량이나 효용성 면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어서일까?
특정 사회·특정 집단에 대한 정량적 평가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그것은 각자 그들 나름의 존재이유와 특수한 삶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을 고려할 때 제주도의 가치는 정량적 평가에서는 계산될 수 없는 절대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광주에서 일어났던 ‘5.18 민주화운동’ 기념행사에는 우리나라의 많은 정치인들이 앞 다투어 참석하려 한다. ‘제주4.3’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제주도의 존재 이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