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이 있으면 추석이다. 우리세대들이 어렸을 때는 추석을 정말 기다렸고 추석날은 먹을 것, 입는 것이 평상시와는 달리 최고의 치장과 진수로 명절을 지냈다. 마음 또한 풍족하여 더 없이 행복한 추석 명절이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추석 며칠 전부터 집안청소를 비롯하여 청동제기 (祭器)를 재(타고난 뒤 가루)나 냇가 모래로 닦는 일은 어린 우리들의 담당 했다.
어머니와 친척 누나들의 대청마루에서 송편과 떡을 빚고, 부엌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어린 조카 동생들은 마당에서 떠들어 놀고 하는 장면들이 실루엣처럼 떠오른다.
조상에 정성들이기 위해서 이발하고, 목욕탕에 목욕을 다녀오는 것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만 해도 제주시에는 목욕탕이 산지 목욕탕 하나뿐이었고, 목욕도 지금 같이 매일 하는 것이 아니라 명절전날이나 특별한 날만 했었다. 그 당시에는 명절 전날은 대목이라 하여서 이발소, 미장원은 밤을 지새웠으며 손님도 서너 시간씩 기다리면서 목욕, 이발을 했다. 비록 부족하고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정말이지 정감 있는 삶이었다.
어느 시인의 말을 빌리면 지난 것은 모두 그리운 추억이 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리운 것인가.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안 그리움은 끝이 없다고 하지 않은가. 어쩌면 이 그리움은 우리네 일상 삶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은 추석을 지내는 풍속도 많이 변해가고 있다. 추석이 되면 평소 왕래가 뜸하든 친척들의 오랜만에 만나서 안부를 나누는 것은 좋지만, 그 대화내용은 옛날 정감이 있고 아름다운 대화보다는 정보화 사회라서 그런지 아파트, 증권 등 그런 대화가 주종을 이룬다.
그리고 가족끼리 동서끼리도 추석 차리기를 기피하여 가족의 우애를 다지는데 반감이 되는 것을 본다. 뿐만 아니라 여자들은 명절기피증이 있다. 명절을 지내고는 더 건강이 악화된다고들 야단이다. 옛날에는 돈만 있으면 추석 차리기는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넘겼는데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제주도만 체불임금이 57억원이 된다고 한다. 즐거운 추석이 아니다.
중산층의 어려움은 경제통계로 잘 말해 주고 있다. 한국의 실질국민소득 성장률은 0%라고 발표했다. 그러면 경제성장률 4%인데 실질소득은 0%라면 일은 4%를 더 했는데 수입은 없다는 얘기다. 다시 말하면 4%소득이 내려갔다는 말일 것이다. 빈부의 양극화를 감안하면 중산층의 삶은 4%가 아니라 몇 십%더 어려워 진 것은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추석을 잘 지내고 정감이 있는 명절이 되기를 바라는 내가 무리이다.
이 0%의 숫자 안에는 젊은 대졸자들의 한숨이, 택시운전사의 고통이, 사오정 가장들의 분노가 서려있다. 이렇게 살기가 어려운데 우리 전통의 미풍을 지키는 데는 한계가 분명히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추석을 추석답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뿐만 아니다. 우리나라도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로 진입되지 이미 오래다. 이로 인해 모든 제품이 풍족 하기만한 요즘 아이들은 추석을 우리가 어렸을 때같이 기다릴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아이들은 추석을 기다릴 시간도 없이 학원이 주는 압력에 눌려 정신없이 바쁘다. 아침에만 얼굴을 볼 수 있는 형편이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추석을 기다릴 여유도 없이 무조건 학원으로만 내몰았다.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아이들도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움 없는 넉넉한 먹거리 때문에 애써 명절을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언제나 명절과 생일 시에 받는 대접만큼은 엄마 아빠로부터 받는 사회이니 추석을 기다리는 그리움, 정, 같은 걸 송두리째 빼앗아 버렸다.
아이들에게 그리움, 기다림, 정을 심어주며 살 수 있는 세월은 이제 없을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금년 추석은 환경이 감당하기 어렵더라도 우리 모두 조상의 음덕을 잘 기리고 정감있는 가족 친척들의 축제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