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심 잃지 않는 모습 좋다는 지인
그가 말한 나의 초심 궁금
정치인 물론 누구나 지키기 힘든 것
작품에 부끄러워 말자는 선배
어떻게 살겠다 결심 순간이 초심
급변하는 현실 속 중심 잡고 작품
“언제 5월이 됐지?”하고 세월의 빠름을 ‘탓’한 게 엊그제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6월이 와있다. 가뭄 끝에 내려주는 값진 단비에 ‘이니정원’에 이르게 피기 시작한 여름 꽃들도 마냥 행복한지 어제와 또 다른 초롱초롱한 색을 발산한다.
일상의 매 순간들을 보약처럼 여기며 나름 시간들을 최선으로 보내 왔는데 목 디스크로 인한 통증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한결같은 자세로 엎드리듯 십수년을 해온 목판화 작업에 따른 ‘직업병’인지 사람을 크게 행동은 물론 생각까지 크게 위축시킨다. 그래서 건강이 중요함을 새삼 깨닫는다.
몸이 불편하니 사고까지 소극적이다. 그래서 일주일 넘게 “과연 갈 수 있을까?”를 반복하다 지난 금요일 울산행 비행기를 탔다.
첫날 울산에서 국제목판화페스티벌 세미나와 오프닝 참석했다. 다음날 이른 부산행 버스를 타고 벡스코에 도착, 16개국 170여개 갤러리가 참여하는 아트페어를 관람했다. 3시간 가량 둘러보고 나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출출할 쯤 미술 전문 잡지사 A실장님을 아트페어에서 오랜만에 만나 커피와 쿠키와 함께 회포를 풀었다. 이런저런 미술계얘기도 나누며 해맑은 소녀 같은 A실장님 덕분에 나도 소녀처럼 마음껏 웃을 수 있어 행복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초심을 잃지 않고 늘 똑같은 내 모습이 참 좋다고 했다. “10년 전 내 모습?” 나도 모르겠는데 A실장님이 말하는 그 초심이란 뭘까 생각해 봤다.
선거가 종료되면 후보에서 당선자로 신분이 바뀐 사람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 또한 ‘초심’에 대한 다짐이 아닌가. 출발은 순수하고 진솔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퇴색되고 변질되어 버리는 것을 우리는 많이 봐왔다. 때문에 지금 시작하는 대통령께 초심을 잃지 않고 진정성 있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주시기를 모든 국민이 간절히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초심(初心)의 뜻은 ‘처음 시작하는 마음’이란 뜻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로 ‘초심 유지’를 꼽는다.
정치인들도 처음엔 발표한 공약에 대해서 철저히 이행하며 국민의 입장에서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약속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 또는 이해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그만큼 초심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뭔가를 시작할 때 우리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각오를 다진다. 어려움이 있어도 이겨내리라 생각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잘 버텨나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린다. 익숙함에서 오는 여유로 조금씩 게으름이 번져온다. 시간이 지나는 만큼 그 시간들이 초심을 갉아 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긴 시간이 지나고서야 ‘후회’로 깨닫는다.
어느 선배가 술자리에서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거야”라고 말한 적이 있다. “최선 보다는 최고가 대우 받고 인정받는 시대, 어느 전시회에 노출되고 어떤 아트페어에서 작품이 판매되느냐가 작가 개인의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가 된 시대지만 적어도 작가라면 자신의 작품에 부끄러워하지는 말자”고 했던 그 선배의 말이 나의 초심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마음 없이, 첫 마음의 중심에는 내가 있다. 누군가가 이렇게 해줬으면 하는 마음보다 매 순간에 처해져있는 현실 앞에서,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던 그 순간의 마음이 내 초심인거고 나의 기본인 것이다.
세월과 함께 내 마음이나 행동이 많이 변해 왔다는 것을 나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지켜야할 초심이 뭘까?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기점을 모르는 초심은 나는 모르겠다.
나는 끊임없이 변해야하고 더 큰 변화를 위해 앞으로 많은 시간을 걸어가야 한다. 초심을 두려워하지도 초심을 잃을까 고민하지도 않을 것이다.
매일같이 무섭게 변해가는 현실에 부딪힐 때마다 새롭게 다짐하며 중심을 잡는 초심으로 작품의 화두를 찾고 조각도를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