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지하수 ‘빗물이 너와지붕 위를 흐르듯’
제주도 지하수 ‘빗물이 너와지붕 위를 흐르듯’
  • 안웅산
  • 승인 2017.0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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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용암층 사이 고토양층 영향
서로 분리된 대수층 등 설명 가능

 

제주도 서부의 수월봉 해안은 겹겹이 쌓인 화산재층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제주도 지하의 지하수 흐름의 양상을 유추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있다. 수월봉 화산재층 아래에서 관찰되는 붉은 색의 점토질 퇴적층이 그것이다.

이러한 층을 지질학에서는 옛 토양이라고 하여 고토양(층)이라 부른다. 고산리에서 잘 관찰되는 이 층은 특히 ‘고산층’이라 이름 붙여져 있다.

수월봉에는 ‘녹고의 눈물’이라는 전설이 있다. 수월봉 화산재층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지하수에 얽힌 전설이다. 수리지질학적 관점에서 보면, ‘녹고의 눈물’은 화산재층을 통과한 지하수가 물이 잘 통과되지 않는 점토질의 고산층을 통과하지 못하고 그 위를 따라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산층과 같은 불투수성의 점토질 퇴적층(이하 고토양층)이 지하 깊은 곳에도 존재할까? 수월봉 고산층에서 관찰되는 지하수의 흐름양상이 지하에서도 일어난다면 이것이 제주도 지하수 흐름의 주요 특징이 아닐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제주도 지하수 관정의 시추코아 자료를 살펴보면, 제주도 지하의 용암층들 사이에는 수 ㎝에서 수 m에 달하는 고산층과 같은 고토양층이 적게는 1매, 많게는 10여 매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제주도 곳곳의 채석장 절개지에서는 수평적으로 연장성 있게 발달한 고토양층이 관찰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추할 수 있다. 균열과 기공이 많은 용암이나 화성쇄설층을 통과하여 지하로 스며든 물이 용암층 사이에 끼어 있는 불투수성의 고토양층에 의해 지하에 모이거나 혹은, 점토질 퇴적층이 소실된 곳을 따라 지하로 더 깊이 침투되기를 반복하며 차츰 지하수체를 형성해감을 상상할 수 있다.

이런 지하수의 흐름은 ‘너와지붕’에서의 빗물 흐름을 떠올려보면 보다 쉽게 이해된다. 용암층 사이의 고토양층이 마치 너와지붕의 너와 한장 한장과 같은 역할을 함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너와모델’이라는 지하수 모델을 최근에 제안한바 있다.

제주도 지하수의 흐름이 용암층 사이의 고토양층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견해는 1990년대 초반 일부 학자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그동안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하수 흐름에 있어 고토양의 역할에 주목하면 그동안 쉽게 설명되지 않았던 제주도 지하수의 흐름 특징이 보다 쉽게 설명된다. 제주도 지하의 지하수체는 수직적으로 연속된 하나의 지하수체로 존재하기보다 서로 분리된 여러 대수층으로 나타나는데, 각 대수층별로 서로 다른 지하수 연령을 가진다. 하부 지하수체로 갈수록 지하수 연령이 높아진다.

수직적으로 서로 분리된 대수층을 고토양층에 의해 서로 나눠진 지하수체로 해석하면 쉽게 해석이 가능하다. 서로 다른 지하수 연령 또한 설명할 수 있다.

대부분의 수자원을 지하수에 의존하는 제주에서 지하수 연구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지금까지 제주도 지하수의 부존형태에 대한 연구는 많은 진전이 있었으나, 지하수의 흐름 모델은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지하수의 실질적 양과 흐름을 예측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실제 지하수 흐름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지하수 모델을 먼저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하수 흐름에 있어 지하에 분포하는 고토양층의 역할을 강조한 너와모델 제안은 그러한 새로운 시도로 인식돼야 할 것이며, 앞으로 너와모델을 기초로 한 지하수 모델링과 물수지 분석 연구가 추가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본다.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1902~1994)가 과학에 있어 오류와 비일관성이 만연한 것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첫째, 아무런 권위도 없어야 한다. 둘째, 모든 과학자는 언제든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셋째,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비판할 경우 자신도 실수를 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만 한다. 보다 적극적인 연구로 ‘물 좋은’ 제주의 지하수의 ‘실체’ 규명에 더욱 다가설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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