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열린 공간 ‘광장’과 탐라문화광장
넓고 열린 공간 ‘광장’과 탐라문화광장
  • 홍경희
  • 승인 2017.0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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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새로운 광장 상징성 충분
인프라에 덧씌울 문화가 더 중요

 

광장(廣場), 한자는 넓을 광(廣)과 장소 장(場)을 쓰며, 영어로는 오픈 스페이스(open space)다. 말 그대로 광장은 ‘넓은 공간’이자 ‘열린 공간’이다. 즉 ‘넓은 공간’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으며, ‘열린 공간’으로서 모인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과 의지, 행동이 자유롭게 펼쳐진다.

그렇기에 광장은 예로부터 생활의 중심지이자 문화의 중심지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도시에 광장인 아고라(agora)가 있고 없음에 따라서 그리스인과 비그리스인으로 나누었을 정도로, 아고라의 유무는 그 지역의 문명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됐다.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광장’이라는 공간이 낯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광장의 힘을 보여준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다. 광화문광장이라는 공간 위에서 이루어진 촛불집회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참석한 누적인원이 1600만 명에 이르는 등 국정농단 사태를 종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한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진 태극기집회 또한 그들의 주장에 동의 여부를 떠나 반대 견해를 자유롭게 표출했다는 점에서 광장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광장이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광장에 모인다는 것은, 자신과 생각이 똑같은 사람끼리만 모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함께 어울릴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식을 전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여러 사람이 모이는 넓은 공간, 그리고 여러 생각이 모이는 열린 공간의 존재 유무는 오늘 날에도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주에 이러한 공간이 있는가를 자문해본다면 그 답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 것은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다.

탑동광장은 넓은 공간으로서 기능하고 있으나 여러 생각이 모이는 열린 공간으로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주시청 앞 광장은 여러 생각이 모이는 열린 공간이긴 하나, 또 넓은 공간으로서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때에 탐라문화광장이 완공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제주시 일도1동·건입동에 소재한 산지천을 중심으로 4만9000㎡의 규모로 조성된 지역을 현재 ‘탐라문화광장’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해당지역이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넓은 공간, 열린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동문로터리 앞 탐라광장은 2486㎡, 북수구광장은 3270㎡로, 서울광장 1만3207㎡에 비해 협소하다고 볼 수 있으나, 제주의 인구규모, 도로까지의 확장 가능성을 감안한다면 ‘넓은 공간’으로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과거 제주의 관문이자 생활 중심지였던 동문·중앙로를 고려한다면 많은 사람이 모이는 ‘열린 공간’으로서의 상징성 또한 충분하다고 본다.

현재 탐라문화광장 조성지역에 ‘탐라문화’와 관련된 요소가 많지 않아, 그렇게 지칭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가 있다. 필자는 지금 중요한 것은

‘탐라문화’보다는 ‘문화광장’이라는 용어에 더 우선순위를 두고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즉 ‘열린 공간’으로서 다수의 의견이 수용되고 융합되어 다양성이 표출되는 ‘문화광장’이 되기 위한 초석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환경을 정비하는 인프라 구축은 행정에서 주도적으로 추진하기에 일면 쉬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인프라 위에 어떤 문화를 덧씌울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스스로 확대·재생산 되는 것은 행정에서 노력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행정은 마중물의 역할을 수행하되,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전문가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과 함께 준비해 나가야 한다. 그러한 노력을 시작할 때 제주를 대표하는 광장을 우리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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