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할머니의 뭉개진 손톱과 분홍 매니큐어
농촌 할머니의 뭉개진 손톱과 분홍 매니큐어
  • 임정민
  • 승인 2017.0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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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주여성 효문화 사업 7년째
올해는 네일아트 서비스도
의외로 많은 할머니들 희망

할아버지도 분홍 손톱 흔들며 웃음
평생 매니큐어 못한 할머니들도
정겨운 이야기 ‘부모’ 생각한 시간

 

효(孝) 사상을 기본으로 하는 문화체험을 통해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2017년 결혼이주여성 효문화 이해·실천사업’이 올해도 시작됐다. 2011년 제주특별자치도 지원사업으로 추진, 올해는 애월읍 지원사업으로 지역내 15개 경로당을 찾아가고 있다. 5월23일 고성1리부터 11월8일 어음1리까지 6개월의 ‘대장정’이다.

마을 경로당을 방문하면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 같은 어르신들이 계신다. 7년째 마을을 순회하면서 이주여성들도, 어르신들도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효문화 행사는 지역 농협과 도의원·애월읍이 함께 해서 더욱 의미가 크다. 특히 하귀농협 김창택 조합장의 배려 덕에 ‘고향을 사랑하는 주부들의 모임’은 2~3시간 만에 100인분의 전복죽을 맛깔스럽게 만들어낸다. 그리고 자기소개·체험사례 발표에 이어 노래한마당을 통해 경로당은 축제의 분위기가 된다.

올해는 지난해와 다르게 네일아트를 서비스하기로 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복병’을 만났다. 노인회장님의 반응이 부정적이다. “‘촌사람들은 매니큐어 안바를 거우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함께 방문한 하귀농협 복지담당 홍선화 과장이 “요양원에 봉사가면 어르신들 매니큐어 다 좋아해 마씨”하며 격려한다. 그 말에 힘을 내어 한분만이라도 발라드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봉사를 시작했다.

한분 두분 경로당은 어느새 어르신들로 꽉 들어찼다. “혹시 지금까지 한 번도 매니큐어를 발라 보지 않으신 분?”하고 물으니 여자삼촌들 대여섯 분이 손을 들었다. 평생 매니큐어를 한 번도 바르지 않으셨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렇게 삶이 각박했을까”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오늘 매니큐어를 발라드리고 싶은데 희망하시는 분들?”하자 여자 어르신들 대부분이 손을 들었다. 손톱강화제를 설명하고 먼저 발라 드렸다. ‘손톱 영양제’라는 말에 남자 어르신들도 손을 내미신다. 노인회장님의 ‘염려’와는 다르게 핑크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손을 흔들며 웃어주시는 남자 어르신들 모습에 한바탕 웃음잔치가 벌어졌다. 모두가 즐거운 시간이었다.

한 쪽에 조용히 계셨던 한 할머니가 “나는 빨강도 아닌 파랑도 아닌 손톱 영양제 호끔 발라보젠”하며 살며시 손을 내밀었다. 일하다보면 손톱이 자꾸 갈라지고 끊어지기 때문에 ‘용기’를 낸다고 하셨다. 평생 농사만 지어오신 할머니의 손은 까칠하고 손톱은 닳고 닳아 뭉개졌다.

내밀기조차 부끄러워하던 손톱이 반짝반짝 빛나자 밝게 웃으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비록 굳고 거친 손이지만 핑크빛 손톱을 원하신걸 보면 나이가 들었어도 천생 여자이고 마음속엔 여전히 ‘소녀의 감성’이 남아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누가 말했나? 촌에 사람들은 매니큐어 바르는 건 관심이 없다고~”

1부 일정을 마무리하고 각국에서 모인 이주여성들이 나란히 자기소개를 했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이야기와 아들·딸 남편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내용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와 본국의 문화와 한국문화를 비교하면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에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녹록치 않은 지역농촌의 삶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주여성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이렇게 3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어르신들의 손을 어루만지고 어깨를 주무르고 완전히 입에 붙지는 않았지만 한국말로 “건강하세요!”라고 건네며 이어지는 정겨운 이야기꽃 속에 이주여성들은 고향에 계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투박하게만 느꼈던 시어머니의 음성이 제주도의 정겨운 언어임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루 이틀 반복되는 봉사활동을 통해 우리는 뼈마디가 으스러질 정도로 일하며 굳어진 삶의 지혜를 배우기도 한다. 함께해서 행복한 우리,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시는 따뜻한 정을 느끼며 지역에서 지역 속으로 한걸음 더 디디게 된다. 사라져 가는 경로효친 사상과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이해하고자 시작한 결혼이주여성 효문화 사업을 통해 따뜻함과 소중함속에 효를 실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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