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적극적인 활용과 보존이 필요한 송악산
더 적극적인 활용과 보존이 필요한 송악산
  • 안웅산
  • 승인 2017.05.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분출’ 제주 선인들 목격한 젊은 오름
지질학·고고학·역사적 가치 높아

 

지금쯤이면 마늘 농사 수확으로 바쁜 대정읍 일대 밭을 수십 ㎝만 파보면 ‘누룩돌’이란 퇴적층이 나온다. 누르스름한 빛을 띠는 돌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누룩돌 퇴적층은 화산재가 굳어져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누룩돌을 만든 화산재는 어디서 분출한 것일까? 서귀포시 대정읍에는 가파도와 마라도 방향으로 돌출된 지형을 이루는 화산체, 송악산이 위치한다. 이 화산이 폭발할 때 하늘 높이 뿜어져 나온 화산재들이 주변 넓은 지역에 쌓이고 굳어진 것이 누룩돌이다.

매운 맛과 단맛의 조화가 뛰어난 ‘대정 마늘’은 그 화산재층 위에 새롭게 쌓인 토양의 양분을 먹고 자란 것이다. 이 화산재는 약 5㎞ 거리에 위치하는 모슬봉과 단산 인근에서도 관찰된다. 당시 화산재가 얼마나 넓은 지역에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송악산은 언제 분출했을까? 송악산은 360여개의 제주 오름 중 연대측정 연구가 가장 활발히 수행된 오름이다. 그 이유는 송악산으로부터 약 2㎞ 거리에 위치한 사계리 해안가에는 사람발자국 화석이 분포하는데, 송악산 분출시기로 사람발자국의 형성시기를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람발자국은 발견 당시 대정뜰에 쌓인 송악산 화산재가 바닷가에 쌓여 형성된 퇴적층(하모리층) 위를 제주의 옛 선인들이 거닐었고, 그 흔적이 발자국 화석으로 남았다고 생각했다. 사람발자국 화석 발견 당시 사람발자국 화석 퇴적층은 물론이고 송악산 자체에 대한 다양한 연대측정이 시도되었으나, 사람발자국의 형성시기 및 송악산 분출시기에 대한 논란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최근 사람발자국 퇴적층 아래에서 10~20㎝ 두께의 화산재층이 발견되고, 그 성분이 송악산 화산재층과 일치함이 증명됨으로써 사람발자국 화석이 송악산 화산활동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송악산 화산재층 아래 놓이는 퇴적물에 포함된 조개편과 송악산 화산재층 아래 놓이는 고토양층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으로 송악산이 최소 3700년 전 이후에 분출한 것임을 알게 됐다.

결국 송악산은 약 3700년 전 이후에 분출했기 때문에 송악산 화산채층 상부에 놓이는 퇴적물에 찍힌 사람발자국 화석은 당연히 3700년보다 젊은 나이를 가지는 것이다.

누룩돌을 더 파고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누룩돌 아래에 연한 갈색의 진흙층이 나온다. 화산재가 쌓이기 전 옛 대정뜰을 이루었던 토양층이다. 지질학에서는 고토양이라 부른다.

대정뜰 고토양층에서는 후기 신석기로 추정되는 토기편들이 다수 발견되는데, 필자는 광여기루미네선서 방법으로 약 5500년±700년의 연대를 얻은바 있다. 결국 대정뜰은 송악산 분출이전 신석기인들이 생활하는 공간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제주의 옛 조상들은 폼페이 정도의 강력한 화산재해를 경험하지는 않았겠지만, 아마 송악산의 화산 분출을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송악산은 제주의 오름 가운데 지질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보존의 가치가 매우 높은 오름이다. 우선 아름다운 경관도 여타의 제주 오름과 견주어 볼 때 결코 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질학적·고고학적으로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더욱이 송악산은 우리나라 현대사 아픔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말 일본군에 의해 해안절벽을 따라 구축된 동굴진지, 해안에서 조금 멀어지면 섯알오름 서쪽으로 1926년부터 10년 동안 건설된 알뜨르비행장, 일제 전투기를 감추기 위해 시설된 당시 격납고가 아픔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에 의한 양민학살터 등 다양한 근대문화유적이 분포, 다크투어리즘으로도 활용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제주에서 가장 젊은 오름, 옛 선인이 화산분출을 직접 경험했을 송악산이다. 균형 잡힌 활용과 보존으로 송악산이 가치를 지역발전에도 기여하길 기원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