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회적인 어떤 안무에 대하여
지극히 사회적인 어떤 안무에 대하여
  • 문정임 기자
  • 승인 2017.0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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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스페이스·씨 11~24일
덴마크 시각예술가 ‘거스톤 손딘-퀑’의 개인전 ‘안무 스크립트의 재구성' 개최
반평생 쿠바에서 예술 활동한 美무용가 '엘프리데 말러'의 삶 영상으로 제작
▲ 전시 시작에 앞서 8일 제주시 중앙로에 위치한 아트스페이스·씨에서 영상 사전 관람이 진행되고 있다. 문정임 기자

이것은 지극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어떤 안무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아직 사라지지 않은, 실존한 어떤 안무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트스페이스·씨(관장 안혜경)가 오는 11일부터 24일까지 덴마크 시각예술가 ‘거스톤 손딘-퀑’(35)이 제작한 영상 ‘안무 스크립트의 재구성’을 선보인다.

‘Time Dead Time Alive’라고 이름 붙인 총 35분 분량의 이 영상은, 작가의 고모할머니이자 미국의 무용가이면서 안무가인 ‘엘프리데 말러’의 삶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 엘프리데 말러의 생전 모습

엘프리데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태어난 현대무용가다. 미국에서 공산당 당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1960년 정치적 망명 차 쿠바로 건너가, 사망하는 1998년까지 38년간 그 곳에서 다양한 문화적 뿌리를 가진 쿠바의 전통 무용을 현대무용과 결합해 새로운 무용으로 승화했다.

엘프리데는 새로운 무용을 추구하는 동시에 사회적인 안무를 만들고자 했다. 예컨대 그가 평생 공들인 어떤 안무(‘Tiempo Muerto, Tiempo Vivo’)는 사탕수수 농장과 그 무역을 다루면서 땅과 노동을 약탈당하고 노예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쿠바인들의 역사를 표현했는데, 당시 엘프리데는 안무를 완성한 뒤 이 무용을 무대가 아닌, 증기로 가득 찬 사탕수수 제분 공장 안에서 추도록 했다. 
이는 엘프리데가 무용에 얼마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움직임을 담고자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삶의 현장에서 영감을 얻고 이를 통해 새로운 무용을 창작하며 일평생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아왔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서 안혜경 관장은 그의 무용을 ‘사회학적 예술’이라고도 표현한다.

엘프리데는 쿠바에 현대무용학교를 세운 설립자 중 한 명이 되었고, 1976년 쿠바의 관타나모 시로 이주한 후에는 그녀의 남은 인생을 ‘단자 리브레(Danza Libre)’라는 무용단을 설립해 그 지역에서 발생한 아프리카식 쿠바 전통춤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일에 헌신하기도 했다.

쿠바는 식민지와 미군정, 독재가 이어지며 국민들이 궁핍하게 살았던 한국의 역사와 많이 닮은 국가다. 특히 엘프리데가 망명했던 1960년대는, 혁명적 공산주의자 피델 카스트로가 바티스타 이 살디바르의 장기 독재를 타도하고 정권을 장악하면서 해방기 제주처럼 정치학적으로 복잡한 시기였다.

영상은 엘프리데 사후 만들어진 관계로 엘프리데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동작을 설명하는 엘프리데의 육성이 계속 흘러나온다. 엘프리데가 안무를 설명하는 동안 화면에는 쿠바의 도시와 일상, 쿠바의 자연이 비추고, 엘프리데를 기억하는 쿠바 무용가들의 회상이 실린다.

거스톤 손딘-퀑은 8일 아트스페이스·씨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예술적 창의성에 대한 열정과, 사회적 선에 대한 신념으로 평생을 살아낸 한 예술가에 대해 존경을 표한다”며 "이것은 나의 가족사에 대한 고찰이기에 앞서 예술가의 힘에 대한 이야기“라고 고백했다.

안혜경 관장은 “제주에도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안무에 담아내려는 무용가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적어도 이들에게 이번 영상이 힘과 용기를 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장에는 영상과 함께, 안무보를 레이저 커팅한 콜라주가 함께 선보인다. 오픈식은 11일 오후 7시다. 전시기간 매일 개관하며, 관람은 정오부터 오후 6시까지다. 문의=064-745-3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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