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제주시민회관이 비어있다”
“옛 제주시민회관이 비어있다”
  • 안혜경
  • 승인 2017.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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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희생된 삶 세계 도처 존재
이를 기억하려는 많은 노력들
‘4·3미술’도 역사 바로 잡는 몸짓

그러나 유실·훼손되는 작품들
온전한 보관·상설 전시 공간 절실
성찰적 감동 예술 체험도 중요

 

 

현대무용가 엘프리데 말러(Elfriede Mahler·1917~1998)를 조명한 거스톤 손딘 퀑(Guston Sondin-Kung)의 비디오와 종이컷 꼴라주 작품들을 소개하는 5월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를 색출해내는 맥카시 광풍을 피해 1960년에 엘프리데는 정치적 신념과 예술적 열정을 지니고 쿠바로 떠났고 하바나 국립예술학교에서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무용교육에 참여했다.

엘프리데는 아름답지만 예술 활동이 척박한 관타나모로 이주해 그 곳에서 단자 리브레(Danza Libre)라는 무용단을 만들어 아프리카와 스페인 영향의 쿠바 민속무용과 현대무용을 결합한 창작과 교육에 전념했다. 그녀가 30여 년 넘게 수정하며 창작한 안무는, 남겨진 부분 아카이브와 안무기록,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구술과 기억의 틈 위에서 거스톤에 의해 재구성된다.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신념 등과 맞물린 권력에 희생된 삶은 세계 도처에 있다. 이를 지우려는 힘에 맞서서 기억하려는 노력 또한 지속되고 있다. 그 중 ‘4·3미술제’도 제주도민에 대한 ‘국가폭력’을 기억하고 ‘이를 왜곡하는 역사’를 바로 잡는 예술적 노력이다.

탐라미술인협의회에서 1994년 시작한 4·3미술제는 올해로 24회째이고 내년이면 4·3은 70주년이 된다. 4·3 미술의 방향을 새롭게 매듭지을 때다.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미술사에 많은 작품으로 남아있다. 가깝게는 1·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등을 거치며 반전 평화 운동·페미니즘 운동으로 촉발된 성평등·성정체성·인종문제, 그리고 에이즈와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에 대해 언론매체와 정부의 비인격적 대응 등과 관련하여 정부와 사회 및 기득권 예술에 대항하는 다양한 저항 미술의 축적이 있다.

농민과 노동자를 소외하는 경제개발과 정치적 억압에 저항하며 우리 문화의 신명을 담아낸 민중미술이라는 맥이 있다. 제주 4·3미술 역시 그런 저항미술의 흐름 속에서도 특별하고 중요한 예술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해 제주도립미술관 학예팀은 ‘4·3미술 아카이브전’을 직접 기획했다. 24회 4·3미술제 양은희 예술 감독은 원도심 카페나 전시공간들을 연결하는 전시로 역사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원도심 예술 다크투어를 시도했다. 꼼꼼한 4·3미술 아카이브 구축과 역사를 기억하며 평화와 인권을 담아내는 참여형 교육프로그램의 상설화가 시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들이 개별적으로 축적된 작품들을 잘 보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미술관에서 만나는 4·3미술 아카이브전이라는 감동을 되새김질 해보면, 미술관 담당자들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유실되거나 훼손된 작품들, 짧은 준비 기간과 인력의 한계 속에서 비롯된 부족한 연구도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작가들의 개인적 작업 역량 변화의 가시성, 매년 시대적 상황과 유기적으로 연계하며 전시를 기획해나간 작품들에 대한 맥락적 고찰, 전시 배치의 아쉬움 등 작품보전과 기록과 해석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이들 작품들을 현재적 시점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창작되고 있는 다양한 작품과 연계해 새로운 해석으로 상설 전시를 만들어 예민하고 세심하며 날카로운 성찰적 감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예술 체험 교육이 필요하다.

뉴욕의 현대미술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피카소 등 거장 미술가들의 상설전시장 작품들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입국 거부 이슬람국가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했다. 예술표현에 대한 억압뿐만 아니라 국립박물관 전시 계획까지 대통령이 간섭해 관장을 해임시켰던 대한민국 정부의 공립 예술기관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도립미술관이 4·3미술 아카이브의 종착역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접근성이 용이한 원도심 안 공간에 평화와 인권을 예술로 표현한 작품들로 이루어진 예술관이 있어 4·3미술의 온전한 보전과 상설전시와 시민이 참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어야 한다. 옛 시민회관도 비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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