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사고’로 작업실 정전
핑계에 마트 시장보기
너무나 긴 밤에 과감히 ‘혼영’ 도전
혼밥·혼술·혼행 등 솔로족 급증
싱글 컨슈머 경제주체로도 주목
방해 없는 ‘나만의 시간’들
앙상한 가지사이로 휑한 흐린 하늘만 쳐다보고 돌아온 ‘벚꽃 없는’ 벚꽃축제 보다 히어리꽃이 노랗게 피고 보랏빛이 남부럽지 않은 제비꽃과 민들레가 어우러져 소록소록 봄 냄새가 풍겨나는 ‘이니정원(유수암리 소재 이니갤러리 마당 꽃밭)’이 봄꽃 축제장이다. 이니정원에서 하늘과 가장 맞닿아 있는 벚꽃나무도 일주일정도 기다리면 화사한 분홍 꽃망울을 터뜨리고 바람 불면 마당 한가득 핑크빛 향기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올해 들어 이니갤러리 작업실 불이 새벽 한 두시 전에는 꺼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 오후 8시 조금 넘은 시간에 작업실 불이 꺼졌다. 작업 도중 갑자기 차단기가 내려가 버렸기 때문이다. 시간상 수리 업체를 부를 수도,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도 그렇고 해서 “이때다!” 핑계 삼아 기세 좋게 작업실 문을 닫고 “냉장고나 채워야지!” 중얼거리며 마트를 향해 평화로를 달렸다.
여느 때 같았으면 중국인 관광객으로 시끌시끌했을 마트 안은 너무 한산해 코너마다 여유롭게 카트를 끌로 다닐 수 있어서 ‘개인적으론’ 너무 좋았다. 동거남(반려견) ‘쪼끄’ 사료와 간식거리도 사며 간만에 여유를 부려 봤지만 작업실을 벗어난 밤은 길기만 했다.
트렁크에 물건을 한가득 밀어 넣고 운전석에 올라타곤 잠깐의 고민 끝에 심야영화를 찜하곤 영화관으로 차를 몰았다. 그동안은 친구·가족 등과 함께 했던 행동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영(혼자 영화 보는 일)’을 시도해 보기로 한 것이다.
‘혼밥(혼자 먹는 밥)’부터 ‘혼술(혼자 먹는 술)’ ‘혼영(혼자 보는 영화)’ 그리고 혼자 여행 하는‘혼행’까지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는 일명 ‘싱글족’이 늘어나면서 우리사회 전반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자신을 위해 소비를 아끼지 않는 ‘나’ 같은 1인 가구의 특성에 따라 싱글족은 소비시장의 블루칩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상을 반영해 다양한 신조어들도 생겨나고 있다. 1인 소비를 뜻하는 ‘싱글 컨슈머(single consumer)’, 자신에게 소비를 아끼지 않는 ‘포미족(for me)’ 등이 널리 쓰이고 있다.
‘1인의, 1인에 이한, 1인을 위한’ 신경제가 열린 것이다. 교육 및 소득 수준이 높은 싱글족이 크게 늘면서 집단이 아닌 개인이 경제 주체로 주목받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유수암 ‘갤러리 이니’에서도 실감한다. 혼자 들어와서 작품 감상하고 커피 한 잔에 들고 온 노트북 열어놓고 몇 시간을 혼자 즐기다 가는 젊은 친구들을 종종 접하곤 한다.
사회가 달라져도 아주 많이 달라지고 있다. 집이 아닌 곳에서 혼자 밥을 먹고 술을 마신다는 것이 남의 눈에 외롭고 쓸쓸해 보일 것 같아 아무리 배가 고파도 혼자 식당 문을 열어 들어가지 못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도 함께 볼 상대가 없으면 감히 생각도 못했던 우리 생활 문화에서의 ‘변혁’이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벗어나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만의 여유를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늘어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침실만 혼자 쓰고 거실이나 주방·휴식 공간들은 함께 쓰는 셰어하우스(share house)도 효율적 소비 패턴에 따른 ‘솔로이코노미(solo economy)’ 영향으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이런 1인 가구가 주도로 사회 전반의 소비경향을 이끌어내며 ‘솔로족’을 위한 새로운 트렌드가 생겨난 것으로 본다.
혼자 사는 사람의 비율이 40%에 달할 정도로 높은 나라는 스웨덴·핀란드·덴마크 등이 꼽히지만 우리나라도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4분의1에 육박한다고 한다. 문화·전통·지역을 떠나 1인 가구는 전 세계적인 대세로 솔로이코노미 현상은 더 확산될 것으로 본다.
첫 ‘혼영’시도는 티켓구매와 좌석에 혼자 앉아 기다리는 서먹함에 따른 후회도 잠시,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팝콘 안 사온 아쉬움까지 다 잊어버릴 수 있을 만큼 관람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아주 만족한 나만의 귀한 휴식을 즐길 수 있었던 행복한 밤 시간이었다. 준비 중인 전시회 끝내놓고 완전히 나를 위한 ‘홀로 힐링’ 여행을 떠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