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인권 소중함 되새기는 시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참된 의미’
4월 3일의 해가 떠올랐다. 69년전 그날을 지켜봤을 그 태양이다. 그리고 오늘은 제주4·3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네 번째 맞는 추념일이다. 그동안 중앙의 행정자치부가 주최하고, 주관은 첫해인 2014년에는 4·3평화재단이, 이후부턴 제주특별자치도가 해오고 있다.
공무를 수행하며 행사를 기획하고 집행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강압적으로 통제하고 주어진 틀만 강요하는 행위에 대한 불편한 심기는 감출 수가 없다.
지난달 21일 제주도·도의회·도교육청 및 유족회를 비롯한 4·3 관련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통해 ‘4·3희생자추념기간’을 선포했다. 4·3 해결에 대한 범도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4·3의 아픔을 경건하게 추모하고자 함이다.
취지에 맞춰 제주도는 봉행집행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엄숙하고 경건한 추념식 행사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고, 식전행사의 합창곡으로 ‘빛이 되소서’와 ‘잠들지 않는 남도’를 선정했다. 그러나 행자부는 올해도 합창곡으로 ‘잠들지 않는 남도’를 배제하여 ‘빛이 되소서’ 한 곡으로 결정하고 통보해왔다.
‘잠들지 않는 남도’라는 곡이 유족들에게 특정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4·3의 행사에서 매번 이 노래를 억지로 격리시켜 원천봉쇄하려는 의도를 도무지 모르겠다.
공연한 확대 해석이라고 할지도 모르나 최근 불거졌던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연계된 문제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덧붙여 아쉬운 점은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위령제에 참석한 이후로는 4월3일에 4·3평화공원을 방문한 현직 대통령이 없다는 것이다. 10여년 동안 국가 수장을 대리한 누군가가 몇 마디의 영혼 없는 추념사만 읽고 가버리기를 거듭했다. 사과와 반성의 마음은 고사하고 영령들에 대한 추도의 마음조차도 없는 듯하여 상심이 크다.
국가 수장의 과거사에 대한 사죄가 상징하는 바는 크다. 독일의 경우 1970년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추모비 앞에서 무릎 꿇고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진심어린 사죄를 했다. 이후에도 독일의 수장들은 전쟁 피해국 국민들에 대해 피해보상과 더불어 반성과 사과의 진정성을 끊임없이 전달했다.
자국의 제주4·3에 대해서조차 불성실한 우리 정부와 너무 대조적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 이후에 이뤄진 국가의 후속조치는 별다른 것이 없다. 참으로 부끄러우면서 한탄스러운 일이다.
대선 정국이라 정치권이 더없이 분주하다. 오늘 추념식에도 대권주자들도 대거 참석할 것이다. 정치적인 일정상 방문하는 표밭으로 여겨 눈도장만 찍을 것이 아니라 4·3 영령들을 진정으로 추모하고 4·3 해결의 중요성과 함께 명쾌한 방향성과 정책 방안을 가슴속에 담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향후 국가의 정책에 성실하게 반영시켜 주기를 요청한다. 국가 지도자를 자처한다면4·3 해결은 어느 개인이나 단체가 아니라 국가조직의 필연적 책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당연히 당리 당략의 정치적 논리에 밀려서도 안된다.
이번 대선을 통해 국민을 최우선으로 섬기고 올바른 역사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현명하고 사명감 투철한 대통령이 선출되기를 소망한다. 중국을 방문했던 메르켈 독일 총리는 대학 강연에서 “과거사 반성의 과정은 심히 고통스러웠으나 과거를 직시한 독일의 선택은 옳았다”고 했다. 우리의 19대 대통령도 제주4·3에 대해 다소 고통스러울지라도 옳은 선택을 해야 한다.
오늘 하루만큼이라도 제주도민과 온 국민이 제주4·3의 역사를 뒤돌아보며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되새겨보는 경건한 시간이 됐으면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진정한 가치를 발할 수 있을 것이며, 저 태양 아래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역사 앞에 한 점 부끄럼 없이 떳떳해지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