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할 것인가, 통제받을 것인가
통제할 것인가, 통제받을 것인가
  • 제주타임스
  • 승인 200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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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욕구에는 늘 그것을 막고 있는 여러 가지 제약들이 함께 한다.  운명적인 제약, 사회적인 제약, 개인 성격으로 오는 제약 등이 개인의식과 충돌하면서 인간의 삶은 갈등에 휩싸이게 된다. 운명적이라는 것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면 그것을 억지로 대항하는 데에서, 사회적 규범 또한 개인의 욕구와 맞부딪히면서 인간의 불행이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의 성격 또한 비관적인 성향일수록 불행을 느끼며 살기 쉽다. 이러한 양상의 관계를 살펴보면 커다란 운명 속에는 사회제도가 있고, 그리고 또 그 안에 개인 성격 순으로 포함 관계를 이룬다.  운명론 쪽으로 갈수록 통제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개인 성격 쪽으로 올수록 통제가능한 상태가 된다.

이렇듯 세상에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돌아가는 지구를 내가 멈추게 할 수도 없고, 타임머신을 이용해서 현재를 과거로 돌릴 수 도 없다. 사실 세상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보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한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통제받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운명을 내가 바꿔놓을 수도 없고, 사회제도를 개인이 맘대로 주무를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 속에서 나는 계속 불행해야만 하는가. 아니다.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내 개인의식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 한 방법이다. 운명과 사회제도 속에 조그맣게 자리 잡고 있는 개인 성격의 포함관계에서 점차로 대등관계로 개인성격의 영역을 넓혀나간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렇게 개인의 자유의지로 성격의 영역을 넓히면 사회적, 운명적 구속을 덮을 수 있다. 그렇게 될 때 자신은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비로소 통제받는 삶이 아니라 통제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유의지를 넓힐 것인가가 행복의 열쇠가 된다.

요즘 학생들을 보면 참으로 안쓰럽다. 새벽에 학교에 가서 수업을 종일 받고 나서도 방과 후에는 과외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밤 10시가 넘는다는 것이 초등학생들의 일과이다. 어느 부모인들 자식을 그렇게 고생하게 하고 싶을까. 옆집 애는 영어를 잘하는데 제 자식이 못하면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자녀가 여기서부터 인생의 낙오자가 된 듯 조급해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차별화 전략을 성공적으로 이행하여 기업 간에 경쟁우위를 확보했어도 얼마간의 기간이 지나면 그 전략은 다른 기업이 따라잡아 결국 일반화가 된다. 그래서 또다시 새로운 전략을 위해 질주해야한다. 끝이 없다. 쉬지 않고 뛰느라 갈증이 나고 숨이 막힌다. 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지구에서 내리고 싶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통제 불가능. 그럼 다른 탈출구는 없을까.

막연히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은 자신 스스로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끌려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빠른 속도로 변해 가는 시대의 구조 때문에 그만 주저앉고 싶다. 세상이 넓어지고 빨라져 감에 따라 개인의 문제에서 사회, 국가, 전 세계적 문제 안의 개인으로서 불합리성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불합리성 속에서 자기의식을 소유하지 않은 삶은 불행을 초래할 뿐이지 않을까.
‘행동은 빠르게 그러나 마음은 느리게’를 강조하고 싶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하더라도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자. 자세히 살펴보면 간혹 먹구름 사이로 잠시 보이는 파란 하늘을 찾아보는 여유를 가져보자. ‘조화석습’(朝花夕拾)이란 아침에 떨어진 꽃을 바로 치우지 않고 해가 지고 난 저녁에 줍는다는 뜻이다. 얼른 주워서 버리는 대신 떨어진 그대로 놔두고 꽃의 향기를 잠시나마 맡아보자는 의미로 여유 있는 삶을 나타낸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일을 게을리 하자는 뜻이 아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의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자기의 위치에서 각자의 몫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러다가도 잠시 책을 덮고 시 한 편을 음영해보자.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개인의 의식세계의 영역을 넓힘으로서 자유의지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불행은 발 디딜 틈이 없게 되리라. 이렇게 살아보면 어떨까. 머리는 통제 받는 세상에 던져주더라도 가슴만은 제 가슴으로 살아가는 것이......

강 연 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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