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삶에 중요한 건 자연과 환경
잘 못하면 정주민마저 떠날 수 도
최근 중국 관광객들이 확 줄어 제주도가 한산하다고들 한다. 어떤 이들은 영업수익이 줄어 아우성이고, 다른 이들은 북적이던 제주도가 한가로워서 좋다고들 한다.
최근 국내선 비행기를 탈 기회가 있었는데 내국인 관광객이 많은 것인지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원하는 시간에 표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최근에는 이주민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또한 국제결혼 등으로 인해 제주도 인구도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고 모든 기반시설이 턱없이 모자라다는 언론기사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를 뒷받침하는 듯 대규모 개발사업들도 진행되면서 하루가 다르게 제주의 모습이 바뀌고 있다.
대체 제주도 사람들은 언제부터 정착민·이주민(도래인)들이 제주도에 오기 시작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제주도가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지고 빙하기를 거치면서 저 멀리 육지부에서 제주도를 보고 먹거리를 찾기 위해 혹은 탐험의지가 불타오르는 구석기시대 어느 인류 집단이 제주에 왔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빌레못동굴유적과 천지연 생수궤유적이다. 최근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외도동 유적에서 3만2000년 전의 찍개석기가 발견됐다.
해수면 변동을 고려하면 섬으로서 인류의 점거는 2만5000년 전후일 가능성이 많은데, 서귀포시 생수궤유적의 석기군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후 후기구석기 전통을 갖는 일군의 집단이 플라이스토세(지질시대 신생대 제4기의 전반의 세·약 200만년 전~1만2000년 전) 최말기와 홀로세(지질시대의 최후 시대·플라이스토세 이후~) 사이에 신석기시대 고산리문화를 형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고산리문화 사람들은 정착민으로서 제주에 완전히 적응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떻게 이주민들이 제주에 정착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조선시대 1702년 이형상 목사가 남긴 ‘탐라순력도’ 41장의 그림 중 진상할 산짐승을 사냥모습을 그린 교래대렵(矯來大獵) 그림을 보면, 군사 700여명을 동원해 구좌읍 교래리 중산간 초지에 잡은 짐승이 기록돼 있다.
사슴 177마리를 비롯, 멧돼지 11마리와 노루 101마리·꿩 22마리를 사냥했다. 하루에 잡은 산짐승이 이 정도인데 선사시대에는 더 많은 신짐승들이 한라산 주변에 살고 있음을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또한 사면이 바다이니 해산물이 풍부했을 것이다. 2000년전의 패총에선 성게 껍질·보말(고둥)·소라·전복 등 해산물의 흔적이 수없이 출토되고 각종 물고기 뼈도 발견된다. 고대 기록물에도 탐라전복이 나올 정도다.
이처럼 먹거리가 풍부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있기 때문에 과거 선사인들이 제주에 몰려와 살았을 것이다. 고려시대에 몽고군이 제주에 100여년간 제주에 정착한 것도 초기에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겠으나 말을 키우기 아주 좋은 자연환경과 목재로 쓰기 좋은 숲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과거와는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과거도 지금과는 다르겠지만 그 이전과도 다른 사회에 살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사는 게 가장 중요한 게 자연환경이다. 산짐승과 해산물 등 일단 먹거리가 풍부해야 사람들이 모인다. 그리고 풍부한 먹거리는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만들어진다.
옛날에는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아마도 선사인들이 지금과 같은 제주였다면 당장 짐을 싸고 떠났을 것이다.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중국이 문제가 아니라 제주로 이주해온 사람들이 다시 육지로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도외로 떠나 살고 있는 재외 제주도민 뿐만 아니라 기존 정착민까지도 제주를 떠나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같은 폭발적인 관광객도 언제 발길을 돌릴지 모른다. 환경이 중요하다. 맹목적 삽질을 그만하고 지속가능한 자연환경을 고민한다. 해야 할 때다. 그리고 제주를 정말 제주답게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