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과 촛불의 문법
김수영과 촛불의 문법
  • 김동현
  • 승인 2017.0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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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으로 조기대선 정국
각당 후보들 뜨거운 경쟁
국민들 입을 막는 선거법이 문제

후보들도 ‘낡은 정치의 문법’ 방조
돈을 막되 입을 막아선 안돼
‘촛불혁명’ 걸맞은 새로운 방법 필요

 

이제 대선이다. 대통령 파면과 조기대선. 우리 정치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대선 후보들의 경쟁도 뜨겁다.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은 지지자들간의 감정싸움 양상으로 번지기도 했다. 촛불광장의 평화를 유지했던 ‘버스에서 내려와’ 운동을 당이 직접 제안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자유한국당도 대선 행보에 나섰다. 바른정당은 그렇다 치더라도 대통령 파면의 책임 당사자인 자유한국당이 대선 후보를 내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 여겨진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 10일 11시21분께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8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탄핵심판 사건에 대해 파면을 선고했을 때 촛불의 함성은 뜨겁게 환호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피청구인의 재임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뤄진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순간 선거관리위원회는 60일 간의 선거 준비에 들어갔다. 이 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발언은 선거법 적용 대상이 된다.

선거 6개월 전부터 포괄적으로 정치적 의사표현을 제약하는 선거법 93조 1항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나 반대를 표현하는 피켓을 드는 일은 불법이다. 좋아하는 후보자의 캐리커처를 그린 가방이나, 열쇠고리 등을 만들어 가방에 달아도 불법이다.

선관위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지지 및 반대 등에 이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정치·사회적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것은 허용된다고 밝혔지만 이 해석은 그 자체가 모순이다. 정당에 대한 지지나 반대 의사가 포함되지 않은 정치·사회적 현안에 대한 견해는 과연 어디까지인도 모호하다.

대선을 앞두고 ‘촛불집회’를 열어야 할지를 여부를 결정해야할 촛불집회 주최 측도 난감한 상황에 빠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촛불의 광장에서 우리는 수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초등학생에서 80대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민주주의를 이야기했다.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기성 정치에 대한 냉혹한 평가도 모두 한 자리에서 울려 퍼졌다. 촛불의 언어는 곧 민주주의 언어였다.

그런데 정작 대선이라는 중요한 정치적 선택을 앞두고 선관위의 경직된 법 해석 때문에 많은 시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2000년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이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도, 선거 기간에 영화 포스터나 광고 등을 패러디한 게시물을 웹사이트에 게재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시민들도 모두 이 법 조항 때문이었다.

촛불의 광장에서 우리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아직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치가 우리의 삶을 바꾼다는 사실을 경험했고 시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를 분명히 깨달았다.

이제 새로운 정치를 위해, 또 다른 민주주의를 위해 더 많은 시민의 개입이 필요한 때다. 그런데 선관위는 오히려 시민의 정치 참여를 막고 있다. 포괄적 금지라는 유례없는 ‘악법’을 그대로 둔 채 선거 참여를 독려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돈’을 막아야하지 ‘입’을 막아서는 안 된다. 시민들은 이제 언제든 말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시민의 몸에 광장의 외침이 가득한데 그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촛불광장은 우리 정치사에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 냈다. 시민은 혁명을 원하는 데 법은 여전히 과거에 묶여 있다. 선관위만 그런 게 아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들도 촛불의 문법은 저버린 채 낡은 정치의 문법으로 경쟁을 치르고 있다.

김수영은 4·19 혁명을 노래하며 “기성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다”라고 외쳤다. 그는 “혁명이란/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이게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불쌍한 백성들아/불쌍한 것은 그대들뿐이다”라고 썼다.

촛불의 혁명은 그야말로 ‘방법부터가 혁명적인’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이미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시작되었는데 혁명의 물길을 막는 기성의 문법은 반성할 줄 모르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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