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웃도 잘 모르는 각박해진 세상
‘정’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는 선물
새마을회관 건물에는 ‘생각은 청렴하게, 행동은 공정하게’와 같은 청렴표어가 계단마다 붙여져 있다. 이 계단을 오를 때마다 청렴의 개념과 청렴의 범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어렸을 적 밤에 잠을 자다보면 어렴풋이 “이수광, 삼촌 떡 가져와수다”라는 소리에 “내일이면 이웃집 제사떡을 먹을수 있겠구나”라는 기분 좋은 기대 속에 잠들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다. 우리 제주사람들의 삶은 바로 그 정(情)이 있어 각박하지 않고 서로 콩 한쪽도 나눠먹는 그런 이웃공동체였다.
아무리 어렵고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었지만 조상님께 제사 올릴 때만큼은 정성들여 푸짐하게 음식을 만들었다. 그리고 제사가 끝나면 이웃집에 떡바구리(떡바구니)를 돌리곤 했다.
그 시절엔 이웃이 가족이었다. 밭에 김을 맬 때나 보리 수확할 때, 소꼴(쇠촐) 베어 눌(소꼴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둥근 더미)을 눌 때도 서로 이웃과 상부상조하는 품앗이를 해야만 살아갈 수 있었기에 더욱 더 이웃 간의 끈끈한 정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정말 변해도 많이 변해버린 것 같다. 정보다는 돈이 먼저인 세상이 되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만남도 정을 나눔이 아니라 거래로 연결되는 것만 같다.
더욱 안타까운 건 이웃과의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졌는데 정서적 거리는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제주에도 주거형태가 밀집형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이웃들이 붙어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면서도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 조차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이웃집 아이들도 그저 남일 뿐이다. 예전에는 이웃집 자녀들이 잘못하면 “어느 뉘 집 자식인데 그러느냐”고 야단치며 어른들이 가르치고 훈계도 했었다.
요즘엔 어른들이 청소년들의 잘못을 보고도 그냥 모른 척 지나치게 된다. 어쩌다 그런 가르침의 훈계를 하면 “나한테 뭐 보태준거 있냐”는 식으로 따져든다. 잘못하면 젊은 사람한테 폭행을 당하기 일쑤여서 그런 훈육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돼버렸다. 더욱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도 문제인 경우가 많다. 분명히 아이가 잘못이 있어 나무라더라도 “당신이 뭔데 남의 귀한 자식에게 욕을 하느냐”고 역정을 내기도 한다.
예전에는 이웃집 살레(찬장)안에 숟가락 몇 개 있는 것 까지 다 안다고 할 정도로 이웃 간에 스스럼이 없고 허물도 없었다. 정낭 하나 걸쳐놓고 나고 들던 때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세상이 너무 달라졌다. 유입 인구가 늘어나고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점점 더 각박한 세상이 된 것 같아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각박해지는 세상을 가만히 손 놓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선 안될 일이다. 아무도 모르게 홀로 고독사 하는 노인인구가 늘어가고, 공과금을 내지 못해 세상을 등지고 그런 일들이 우리 제주에서만이라도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야말로 우리 제주의 ‘수눌음정신’ 품앗이운동으로 이웃공동체운동을 전개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 새마을회에서도 적지 않은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다. 혼자 사는 ‘노인 돌보미 운동’으로 밑반찬 지원 사업, 집안 청소 해드리기, 빨래 해드리기, 말벗 해드리기와 어려운 이웃 김장나누기 등이 대표적이다. 다문화가정과 함께하는 문화체험 등 다양한 이웃공동체운동으로 행복하고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를 통해서 이웃에 대한 애정과 함께 나누고 서로 배려하는 공동체 회복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청탁금지법’이 시행되면서 함께 밥 한 끼 먹는 일도 주저하게 되고, 따뜻한 봄날에 쑥떡 한소쿠리 건네는 것도 겁먹는다면 ‘사람을 위한 법’이 아니라 ‘법을 위한 법’이 될 것이다. 대가를 바라며 주는 선물은 뇌물이고 어려운 이웃에게 주는 선물은 바로 정(情)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정을 많이 퍼 나르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