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비엔날레에 건네는 몇 가지 질문
제주비엔날레에 건네는 몇 가지 질문
  • 송경호
  • 승인 2017.0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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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벤트 거명 두달 만에 기본계획
첫회 ‘과속질주’ 기네스북 등재감
뜬금없이 튀어나와 일사천리 진행

공론화 여론수렴 문화예술인 위주
‘관광 자원화’ 도구적 관점도 문제
초반 여유갖고 꼼꼼히 준비해야

주관식 문제가 담긴 9쪽짜리 시험지.

1월 9일자 제주비엔날레 기본계획을 본 뒤 든 느낌이다. 도립미술관장을 거쳐 행정부지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이름 박힌 9쪽짜리 서류다.

지난 해 11월 제주비엔날레라는 빅 이벤트가 거명된 지 두 달 만이다. 놀라운 집중력이며, 속전속결이다. 기본계획대로라면 7월 말, 무리다 싶어 늦춘 게 9월 개막. 임신부터 출산까지 9~11개월이다. 이쯤 되면 기네스북 등재 감이 아닐까. 2회나 3회도 아닌 첫 회를 그리 치르겠다니 말이다.

과속 질주 비엔날레 호에 실은 짐조차 과적(過積)으로 보인다.

기본계획 결재자들은 ▲21세기 제주를 대표하는 문화브랜드 ▲전 지구의 최전선 이론과 실천 담론 집결 ▲관광자원화를 위한 예술 인프라 확충을 모토로 내걸었다. 뭔가 있어 보이는, 그러나 익히 봐온 수사(修辭)다. 10억 들여 쫓기듯 벌이는 판치고는 거대하고 우아한 꿈이다.

물론, 꿈이야 크게 꾸고 볼 일이다. 시작은 미약하되 ‘나종’은 창대할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큰 그림이 잘못됐다 해 문제될 일도 없다. 그러니 일단 ‘그림’은 크고 애매하게 그리고 볼 일이다.

이런 그림 앞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공개된 문서라고는 기본계획 하나뿐이니 그렇다. 20년 현장 취재 경험에 비춰 봐도, 정작 알고 싶은 것은 대부분 ‘문서 밖’에 있었다. 시정(市井)에서 오가는 말 속에 숨겨있었고, 구경꾼들이 던지는 말 한마디에도 배어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나름 도민’이자 국외자 입장에서 궁금한 몇 가지 묻고 싶다. 다만 묻되 굳이 답변을 듣고자 하는 건 아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함께 생각해보자는 취지니 그렇다.

그 하나는 태생 배경이다. 사안의 진정성을 액면 그대로 봐주기 어렵다는 거다. 이른바 ‘오염론’인데, 잘라 말하면 ‘정치적 소산’ 아니냐는 얘기다. 저자거리에서 흔히 나돌고, 저마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야기다. 원인 제공은 명백하게 주최 측에 있다. 뜬금없이 튀어나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모양새가 불러일으킨 풍경이다. 이제껏 없던 거고, 늦춘다고 큰일 나는 것 아닌지라 더욱 그렇다. 모름지기 이런 일은 길고 멀리 봐야한다는 건 너나 없이 다 잘 안다. 한데, 그게 아니니 ‘오염론’이 도는 거다. 바이러스처럼.

또 다른 하나는 ‘그들만의 축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임시로 정했다는 이번 프로젝트의 주제(The Social) 앞에서 지루함과 답답함을 느꼈다. 지난해 광주와 서울의 비엔날레 주제(또는 전시제목)와 자웅을 겨룬다. 이런 주제를 볼 때마다 담벼락을 마주한 기분이다. 해탈한 고승의 화두라 할 수도 있겠다. 그걸 풀고 이해한 뒤에야 ‘그들 세계’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걸까? 아무나 들일 수 없다는 거대한 진입장벽이다.

비엔날레 카드가 제시된 이후의 이른바 여론수렴 과정도 그렇다. 공론의 장은 문화 생산자와 기획자, 비평가, 예술단체 관계자 등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혹자는 ‘이해관계 당사자 네트워크’ 또는 ‘그들만의 카르텔’이라 한다. 일부 국외자(局外者)들이 참여했다지만 ‘전 지구적 최전선 이론과 실천 담론’ 등의 숭고하고 스펙터클한 레토릭(rhetoric)에 감히 토 달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

대놓고 비엔날레를 ‘관광산업 중흥의 자원화’ 하겠다는 도구적 관점도 그렇다. 굳이 부르드외나 프레이저 등을 들먹이지 않아도 충분한 합리적 의심이다. 물론 자치단체 등 공공부문이 주도하는 모든 예술기획은 도구적 관점에서 시작돼 성과주의적 관점에서 평가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놓고 간판처럼 내걸었다는 건 민망하다. 이에 따른 보완 혹은 방어기제를 어떻게 구축하고 작동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비엔날레를 연다는 것은 끝 모를 장거리 마라톤에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단 시작되면 쉼 없이 돌아간다. 하여, 초반의 여유와 페이스 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할 거다. 하나, 제주는 출발점부터 단거리 경주를 방불케 한다. 빨리 달릴수록 주위를 돌아보거나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적다. 더욱이 그건 예술다운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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