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 홍성직
  • 승인 2017.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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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 300불 부탄의 ‘행복’
왕실 솔선수범에 세계적 윤리관
높은 환경의식·도덕적 수준

슈마허 ‘작은 일터’ 강조
물질적 팽창서 자유 향한 삶 주문
국정농단 한국에도 강한 메시지

부탄 여행을 다녀온 지인이 입을 열면 부탄 예찬이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생태적으로 잘 보존된 환경과 사람들의 따뜻하고 고운 심성이 너무 좋았다고 한다.

수년 전 히말라야 부탄왕국에 운영하던 한글학교 과정을 마친 젊은이들을 제주로 데려온 적이 있다. 제주 기술교육 프로젝트에 관여하던 때였다. 당시 부탄은 경제개발5개년 계획 속에 이 프로젝트를 포함시켜 예산을 확보하고 있었으나 제주에선 관심 있는 개인이 참여하는 민간프로그램이었다.

부탄은 국민소득이 300불도 되지 않는 빈국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과정부터 자국어와 영어를 수업에 병행하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누구나 영어로 자기 의사를 말과 글로 표현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

당시 만났던 부탄의 관료들은 서방기술이나 자본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철저하게 부탄의 세계화에는 경계심을 보였다. 이웃나라 네팔이 개방과 세계화 과정에서 피폐해진 상황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탄은 관광이 주 수입원임에도 관광객을 통제한다. 교통·숙박·여행에 등급을 매겨 사전 허락과 함께 여행비를 선불해야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금연국가’라는 점이다. 쿠바 시가를 수입해 애용하던 왕실이 먼저 금연하고 보건성 장관이던 왕자가 1년 동안 전국을 순회하며 전 국민 대상 금연 캠페인을 실시한 후 세계 최초로 금연국을 선포하고 담배의 생산 유통 흡연을 불법화한 것이다.

공무원들은 근무 중 반드시 전통 복장을 입어야 하고, 초등학교부터 환경 과목과 함께 불교 중심의 세계관과 윤리의식을 통해 사회 전체가 물질적으로는 부족하지만 높은 환경의식과 도덕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국민의 행복지수도 한국보다 훨씬 높았다.

성장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거대자본과 복합기술의 현대산업사회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는 하나의 악이 될 수 있다고 오래 전부터 경고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서구식 대량 생산양식이 아닌 지역 고유의 자원을 이용한 지역적 생산 기반을 지켜야 지속 가능한 사회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하고 인간을 종속시키지 않고 중앙집권화와 관료주의를 낳지 않는 작은 단위의 기술을 ‘중간기술’이라 명하면서 좋은 노동과 행복한 노동은 작은 일터에서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의 노동관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하고 유용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둘째는 신이 주신 재능을 잘 발휘해 각자의 재능을 완성하는 것, 셋째는 태생적인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협력하는 것이다.

그는 바로 독일 태생의 영국 경제학자인 E. F. 슈마허(Ernst Friedrich Schumacher)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자발적 가난’ ‘굿 워크’ 등이 한국어로 소개된 그의 작품이다.

많이 버는 노동만이 가치 있는 노동이고, 성장만이 유일한 살길이라고 여기는 물질지상주의에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 온 것 같다. 한국의 정치·종교·교육·문화·경제 어느 것 하나 물질지상주의 앞에 온전해 보이지 않는다.

최근 나라를 흔들고 있는 국정농단 스캔들의 면면만 지켜보아도 위에서 아래까지 한국사회 전체가 집단적 도덕 불감증에 걸려 있음이 틀림없다. 치유의 역할을 기대해야할 한국의 종교도, 교육도, 가정도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산업화 자본주의 국제무역 세계화 FTA 자유시장경제가 가져다 준 것이라 할 수 있는 온갖 문명의 이기(利器)들을 매일 누리면서 반물질주의 반성장주의가 자본주의 병폐 극복을 위한 대안이라는 주장은 어폐가 있다. “물질적 팽창만을 갈망하는 무지의 삶에서 이제 진정한 자유를 향한 순례의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슈마허의 말을 곱씹어 보아야 때인 것 같다.

최근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거대도시 서울을 탈출해 돈과 성장과 경쟁을 포기하고 제주에 살고 싶어 내려오는 젊은이들이 줄을 서고 있다. 어쩌면 이들의 ‘U턴’이 슈마허와 같은 성찰에서 출발해야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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