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대표적 여류 예술가 신사임당
조선시대 대표적 여류 예술가 신사임당
  • 서인희
  • 승인 2017.0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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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정치가 율곡의 어머니
조선시대 현모양처의 대명사
아들과 함께 지폐에 등장 ‘민폐도’

어머니 이전에 훌륭한 화가
사실주의의 백미 ‘초충도’ 등 남겨
숙종 임금도 작품 보고 경탄

“신사임당이 나와서 고모 힘들구나!” 지난 설날 세배를 끝내고 예쁘게 무릎 꿇고 기대에 찬 눈으로 쳐다보는 조카들에게 세뱃돈을 나눠주며 던졌던 우스개다. ‘신사임당’의 등장으로 세뱃돈 단위가 1만원권에서 5만원권으로 슬그머니 올라가 버린 탓에 지출 후유증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세뱃돈으로 시작된 신사임당 얘기가 때마침 모 방송에서 시작한 ‘사임당’을 그린 드라마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늘 조용하기만 했던 집이 조잘조잘 조카들의 목소리에 웃음과 행복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불꽃같은 삶을 산 사임당, 그리고 연인 천재화가 이겸과의 아름답고 애틋한 이야기. 현모양처 속에 박제되어 있던 신사임당이 오늘날 예술혼이 살아있는 한 여성으로 살아나서 현대와 과거를 넘나드는 허구가 잔뜩 들어간 드라마를 보고 나서 그녀의 이미지가 달라져버리지는 않을까하는 걱정도 없지 않다.

신사임당(1504~1551)은 조선시대 위대한 정치가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현모양처의 대명사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위인을 제치고,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그것도 아들과 함께 지폐에 등장한 ‘인물’ 중에 인물이다. 그는 유교 국가 조선의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오랫동안 추앙받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사물을 보는 눈이 깊었던 신사임당은 학문 뿐 아니라 문장과 붓글씨·자수 등에 이르기까지 천부적이었다. 7살 때부터 화가 안견의 화풍을 이어받아서 산수·포도·곤충 등을 그리는데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그림 속의 풀벌레를 진짜인 줄 알고 닭이 쪼았다는 일화까지 있다. 이처럼 뛰어난 예술가인 신사임당의 고고한 삶과 인품은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해져 훌륭한 어머니로서 또한 이름을 드높였다.신사임당은 분명 훌륭한 어머니였다.

하지만 어머니라는 직분 못지않은 중요한 직분이 또 있었다. 강릉 북평에서 태어난 그는 학문과 서화를 배우며 성장,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주변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그림으로 그려낸 예술가였다. 꽃 한 송이·벌레 한 마리·열매 한 알까지도 생명을 불어넣어 그림으로 승화시켰던 화가였다.

몇 해 전 들렸던 춘천박물관 개관10주년 기념전에 출품된 신사임당의 ‘도충도수병(보물595)’ 8폭 병풍을 보고 받았던 감동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검은 비단에 명주실로 꽃과 풀·곤충들을 신사임당의 정성으로 한 땀 한 땀 수놓은 작품이다.

작가와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자수병풍의 ‘가치’를 떠나 구도나 기법이 독특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섬세한 밑그림으로 세밀하게 묘사해 명주실로 수를 놓아 청아한 느낌의 회화성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었다. 당시 놀랐던 또 하나의 사실은 강릉 오죽헌박물관에서 본 ‘초충도병풍’이 ‘도충도수병’ 자수병풍을 위한 밑그림이었다는 점이다.

사임당의 ‘초충도’는 조선시대 후원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꽃으로는 양귀비·패랭이·범부채·나팔꽃·맨드라미·과꽃·쑥부쟁이·봉숭아·원추리·접시꽃이 그려져 있다. 텃밭에 심었을 도라지·오이·가지·수박·조 이삭 등도 보인다. 닭의장풀·쇠뜨기·쑥부쟁이·민들레·뱀딸기·여뀌·바랭이풀·꽈리 등 야생화도 등장한다. 여기에 꽃밭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다양한 나비와 잠자리·방아깨비·여치·귀뚜라미·쇠똥구리·사마귀·개미·집게벌레·풍뎅이·도마뱀·장수하늘소 등이 출연한다.

이 모든 것들을 후원에 꾸며진 꽃밭과 텃밭에 등장시켜 보면 조선 여인들의 생활공간에 있던 정원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듯하다. 사임당의 ‘초충도’의 매력은 이런 사실주의에 있다고 할 것이다. 대부분의 것들이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듯이 우리의 꽃들이 지금도 많은 작가들의 화폭에 담겨지고 있다.

48세에 작고할 때까지 그리 길지 않은 삶 속에서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다. “꽃이여 벌레여 모양도 같을 시고, 부인이 그려 낸 것 어찌 그리 묘한고,” 조선시대 숙종이 신사임당 작품을 보고 경탄하며 남긴 말이다. 신사임당은 취미로 그림을 그린 현모양처가 아니라 시대를 풍미했던 훌륭한 화가로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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