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첨단시대의 4차 산업혁명기
안락한 삶은 확실할 듯
물질적 편리함이 행복한 삶은 아니
생각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
결코 빵만으로 살 수는 없어
삶의 가치 문제에 답 찾아야
성프란시스대학이 서울역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한 적이 있다. 하루 생계조차 불투명한 그들에게 소크라테스와 공자를 이야기하는 것이 가당한 일인가? 강사였던 도종환 시인 역시 “생의 밑바닥에 내던져진 사람들에게 한 편의 시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 나도 자신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결과는 ‘의외’였다. 강좌 만족도가 82.4%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95%가 강좌 참여를 통해 사회와 삶·대인 관계 등에서 긍정적 변화가 있었다고 답했다. 그들에게도 진정 필요한 것은 빵이 아니라 자존감이었다.
오늘날 현대문명은 소셜미디어·인공지능(AI)·로봇·생명과학기술 등에 의해 혁명적 변화를 겪는 4차 산업혁명기에 들어서고 있다. 국토교통부장관은 2017년 신년사에서 국운을 좌우할 제4차 산업혁명에 따른 세계적 수준의 지능정보 인프라 구축을 화두로 내던졌다. 이 최첨단 문명의 시대에 케케묵은 고전의 향기 운운하고 있으니 어쩌면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시대착오자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이루어낸 우리의 편리한 삶이 곧 행복한 삶이라 말할 수 있을까? 헉슬리(Aldous Huxley)는 이미 ‘용감한 신세계(1932)’에서 물질지상주의가 몰고 올 시대를 경고한다. 그의 ‘신세계’는 과학에 의해 부족함이 없는 유토피아다. 우생학적 인간들만 탄생시키는 곳에서 노동할 필요도 없고 그저 안락만을 누리면 된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 물질적 풍요 등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에도 모자란 것이 있다. 사람 사는 냄새, 즉 인정과 사랑이다. 어느 날 실험실에서 잘못 태어난 존(John)이 이를 깨닫고 현실에 끝내 적응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살 직전 “나는 안락과 행복을 원치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시(詩)이고 자유“라고 외친다.
그의 절규는 4차 산업혁명을 자부하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아닐까? 오늘 우리 사회의 가치는 따뜻한 인간관계를 맺는 윤리적 원리가 외면당하고 있다. 결국 정신보다 물질을, 마음의 양식보다 몸의 양식을 선호하는 가치관이 팽배해질수록 사실 그 사회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다.
모든 것이 원 터치로 이루어지는 오늘날 문명은 인간 행복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지만 물질적 안락과 편리함이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우리는 결코 빵만으로는 살 수 없는 무엇인가 보다 나은 것에 대한 꿈을 추구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나의 삶과 죽음의 궁극적 의미는 어떤 태도로 삶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운명 앞에 저항하지 못하는 떠다니는 부유물인가? 아니면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내면의 자유를 간직한 고귀한 존재인가? 내가 사는 공동체는 어떤 곳을 지향해야 하는가?
만일 짐승처럼 생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으로서 옳고, 보람 있게 살고자 한다면, 누구나 풀어야 할 문제들임에 분명하다. 지금 우리는 나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경쟁만이 강요되는 비정한 세계에 살고 있다. 그래서 내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치(價値) 문제에 스스로 답을 내야 한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고전이 새삼 필요한 까닭이다. 물론 고전이 배부르게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 어떠한 태도로 빵을 먹어야할지를 일깨워준다.
물론 인스턴트 시대, 고전 읽기란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아나톨 프랑스는 “고전이란 누구나 그 가치를 인정하는 책이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책”라고 했다.
그러나 귀 기울여야 한다. 인생에 있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바람직한가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이며, 옳거나 바람직한 것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오던 방식대로 답습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기 때문이다.
정유년 새해다. 새해 소망이 칠흑 같은 밤을 보내고 동이 트는 일출과 같은 희망이라면 거기에 고전의 향기 피어나는 정유년을 설계하면 어떨까?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고전을 등짐지고 유랑의 길을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