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움과 왜곡된 인간주의
자연스러움과 왜곡된 인간주의
  • 홍성직
  • 승인 2017.0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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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움은 인간다움
인간다운 삶의 ‘의미 변질’
경제논리에 ‘환상의 섬’ 중병

개발에 대한 인디언 추장의 명언
“우리도 소유하고 않은 성스러운 땅”
자연스러운 세상을 꿈꿔본다

‘자연(自然)’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저절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존재와 상태’다. 자연스러움은 인간다움의 첫 번째 덕목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인간다움이 ‘편리하고 깨끗하고 빠르고 달콤하고 반짝거리며 비싸고 자극적인 것’ 등으로 정의되기 시작했다. 쉽게 많이 벌어 자신이 아니라 남의 땀으로 살기와, 더 많은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게 ‘인간다운 삶’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이런 변형된 인간다움은 누리면 누릴수록 우리의 삶은 엄밀한 의미의 자연스러움과 멀어지고 만다. 우리 가슴속은 시나브로 왜곡된 자연스러움으로 채워지고 만다.

제주개발특별법은 이렇게 시작한다. “도민이 주체가 되어 제주도의 향토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고 자연 및 자원을 보호하며 (중략) 쾌적한 생활환경 및 관광여건을 조성함으로써 제주도민의 복지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곰곰이 살펴보면 결국 제주도가 대내외 투자가들과 관광객들에게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인위적 편리와 혜택들을 담는 게 목적인 것처럼 보인다.

행정은 “제주국제자유도시다” “8조8000억이 투자되는 제주개발 5개년 계획이다”하면서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제주 땅을 딛고 사는 제주인의 삶과 제주의 미래에 얼마나 보탬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 보면 알게 될 것이다.

1885년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피어스가 지금의 워싱턴 주에 살던 수와미족 추장 시애틀에게 그의 땅을 팔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시애틀 추장은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고 한다.

“당신들은 어떻게 저 빛나는 솔잎이며, 해변의 모래톱이며, 어두침침한 숲속의 안개며, 신선한 공기와 반짝이는 개울물을 사고 팔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소유하고 있지 않은 그 성스러운 것들을 말입니다. 당신들은 분명히 왕성한 식욕으로 대지를 마구 먹어치운 다음 그것을 황무지로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성스러운 숲속이 인간의 냄새로 가득 차고, 산열매가 익는 언덕이 인간의 발자국으로 더럽혀 질 때면 그것이 바로 삶의 종말이요, 죽음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쏙독새의 아름다운 새소리나 한밤중 연못가에서 들려오는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산다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제주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주도는 한반도 최남단에 있어 열대식물종도 분포하며 섬 복판에는 1950m나 되는 한라산이 솟아 있어 한대림·온대림·난대림, 그리고 고산식물까지 자생하고 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속 생태계까지 생각한다면 제주도는 보물섬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 녹나무·먼나무·조록나무·구상나무·무주나무·시로미 등 수많은 제주 땅이 키워내는 나무며 자생식물들을 그저 한가로이 보고 즐기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여기저기 치솟는 아파트와 수많은 골프장, 장소를 가리지 않는 대단지 리조트 개발 등으로 사라질 나무와 숲과 더불어 이들이 이 땅에서 모습을 감추기 전에 종자은행이라도 만들어 유전자를 보존해야 할 판이다.

안타깝게도 ‘환상의 섬’ 제주는 지금 경제 논리와 개발의 미명하에 깎고, 자르고, 파헤치는 인간의 폭력 앞에 회복되기 어려운 중병을 앓고 있다. ‘환장의 섬’으로 변해가고 있다면 우려는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욕망의 충족을 위해서 멈춰 서지 못하고 있다. 더 많은 돈, 더 빠른 길, 그리고 더 크고 편리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영원히 간직해야 할 가치 있는 제주의 보물들을 너무나 쉽게 포기하고 있다.

시애틀 추장은 이렇게 말을 맺는다. “이제 당신들이 이 땅을 가지게 되면 우리가 이 땅을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땅에 대한 기억들을 지금의 모습대로 간직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힘과 정성을 다해서 당신들의 후손을 위해 땅을 보존하고 또 신이 우리를 사랑하듯 그 땅을 사랑해 주십시오. 인간뿐만 아니라 신에게도 대지는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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