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배타적인가”
“누가 배타적인가”
  • 송경호
  • 승인 2017.0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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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이주자 몰리며 ‘텃세’ 이슈
토박이들의 배타성 성토 대상
알고 보면 제주섬은 뭍과 다른 곳

공동체 문화·언어·풍속 판이 당연
같이 살려면 공감 노력 필요
섬 배타성 거론하는 ‘배타성’ 의심

제주와 인연 맺은 게 얼추 사반세기(四半世紀)를 웃돈다. 서른 다 돼 제주처자 만나 뻔질나게 오가며 맺은 인연이다. 제주 처자는 각시가 됐고 덩달아 제주는 처가가 됐다. 그 뒤 제주와의 인연은 깊고 넓어졌다. 육 남매인 아내의 형제들은 처남 동서 등으로 엮였고, 그들 벗 일부와도 이리저리 얽혔다.

제주 처가 덕분에 ‘재외제주도민’이라는 신분(?)도 얻었다. 덕분에 몇몇 미술관은 반값으로, 웬만한 국공립공원은 공짜로 드나든다. 어쩌다 함께 하는 ‘순수 육지 것’들은 부러운 눈치다. 물론 1년에 서너 차례 제주 오가면서 도민 행세하는 게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할 거다. 제주로 이주한 벗들도 마찬가지겠다.

‘뭍에 사는 제주도민’은 분명 형용모순이다. 뭍에 살면 ‘뭍것’이고 아니면 아닐 거다. 그런데 굳이 이런 정책이 나온 건 고향에 대한 우리네 애틋한 정서 때문일 거다. 태어난 곳이 갖는 무게를 사는 곳보다 더 쳐주는 게 우리네 정서다. 그러니 제주 이주 수 년 된 후배보다 한 해 서너 차례 오가는 내가 더 제주사람 노릇을 하는 거다. 내 고향도 아닌 마누라 고향이란 걸 앞세워 말이다.

시답잖은 얘기가 길었는데, 한마디로 제주와 나 사이를 잇는 인연이란 건 별 것 없다. 처가를 앞세워 덤으로 얻은 게 전부니 그렇다. 다만, 긴 시간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오가며 얻은 감흥과 경험이 전부다. 토박이든 이주민이든 여러 부류 벗들이 건넨 지혜 또한 값지다. 이주한 벗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흥미롭고, 토박이들의 열변 또한 언제나 귀담아 들을 만 했다.

이처럼 술과 차와 밥을 사이에 두고 오간 얘기들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오간 건 예의 그 ‘텃세’다. 수 년 전부터 제주에 이주자들이 몰리면서 텃세는 민감한 이슈로 종종 떠올랐다. 토박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이주민들의 낯선 생활양식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주민들은 이주민대로 일정 거리 안쪽으로 진입하지 않거나 못하는 토박이들을 섭섭해 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아쉬워하는 모양새다. 더러 몇몇 토박이 벗들은 대놓고 이주자들의 방자함을 꾸짖었고, 이주한 벗들 또한 토박이들의 텃세 또는 배타성을 성토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 끼었을 뿐 어느 쪽에도 들지 않는 나로서는 영락없는 박쥐노릇이다. 난감할 때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며 절묘하게 중립성을 고수해야 했다.

따지고 보면 세상 어느 곳이든 새롭게 발 딛는다는 건 쉽지 않다. 낯선 땅을 새로운 삶터 삼는다는 건 더욱 그렇다. 그런즉 ‘육지와 뚝 떨어진 섬’ 제주에 들어선다는 건 그만한 다짐이 필요하다. 삶터를 옮긴다는 것으로서의 모든 ‘이주’가 그렇듯, 제주로의 이주 역시 그만한 준비가 필요하다. 나의 토박이 벗들이 입 모아 토로하는 것도 이런 것이다.

탐라에서 오늘에 이르는 제주 역사와 문화에 밝은 벗들은 한반도와 제주라는 섬의 문화권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지적한다. 한반도가 농경 문화권이었다면 제주는 해양문화권으로 그 다름의 폭과 깊이가 여느 곳과 크게 다르다는데, 나 역시 동의한다.

대표적인 것이 언어이며, 이밖에도 공동체 문화나 풍속 등도 판이하다. 이렇듯 다른 문화권으로 이주하자면 어느 정도 이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다른 나라로 이민 갈 때처럼 미리 말을 배울 정도는 아니더라도, 다른 사회,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본적 이해 정도는 갖춰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오랜 세월 섬에서 살아온 이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그들의 정서와 문화에 대한 공감의 폭을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게 앞으로 살아갈 땅과 더불어 지낼 이웃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지난 몇 해 짧은 기간 동안 제주 섬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이 몰리면서 풍경과 환경이 빠르게 대규모로 달라지고 있다.

이를 지켜봐야 하는 것 또한 대를 이어 살아온 제주사람들에겐 큰 스트레스다. 그것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탓하는 ‘섬사람들의 배타성’은 곧 자신들의 배타성을 드러내는 것 아닌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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