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것 가르치기보다 개인 수준과 진로에 맞는 교육 제공에 중점
낮은 학업성취도, 강한 국가경쟁력, 높은 행복지수가 가능한 이유
독일은 교육적 환경이 한국과 참 다른 나라다. 국가 경쟁력 순위가 세계 5위(세계경제포럼, 2016/한국 26위),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4위(IMF, 2016/한국 11위)로 한국보다 ‘잘 산다’. 그러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순위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반면 행복지수는 157개 국가 중 15위(세계행복지수2016 보고서)로 한국보다 월등히 높다. 낮은 학업성취도와 강한 국가 경쟁력, 그리고 높은 행복지수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편집자주>


■학교는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곳
겨울의 독일은 해가 빨리 저물었다. 한국과 비슷한 초겨울 날씨였고, 크리스마스를 꼭 한 달 앞두고 본격적인 성탄맞이 행사가 도심 곳곳에서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취재진은 독일의 평범한 학교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대도심이 아닌 독일 중서부(라인란트팔츠 주)의 소도시 프랑켄탈(Frankenthal)로 가 유치원과 초등학교, 직업학교 등 네 곳을 방문하고 여러 연령대의 현지 아이들을 만나 그들의 일상을 살펴보았다.
우리가 방문한 모든 학교들은 공통적으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매우 중요한 교육적 목표로 강조하고 있었다.



취재진이 찾은 루드비히 유치원은 2~6세 아이들을 혼합 구성해 나이가 많은 유아들은 리더십과 책임감을 키우고 어린 영아들은 형과 언니로부터 다양한 능력과 특성을 배우게 하고 있었다.
페스탈로찌 초등학교에는 정상 학생과 장애를 가진 학생,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 이민자 자녀가 모두 함께 다닌다. 이들은 함께 생활하고 배려하면서 나와 그들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익숙해진다. 장애아동 역시 자신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이 아님을 인식하면서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평범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갖게 된다.
로베르트 슈만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규칙을 준수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행동카드’를 활용하고 있었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질서를 지키지 않거나 약속을 어길 때 경고장을 카드에 적어두는데 이렇게 하면 하루에 여러 교사가 거쳐 가더라도 담임은 행동카드를 통해 그날 하루 아이들의 생활을 파악할 수 있다.
담임은 이 행동카드를 보고 아이들의 수첩에 그에 맞는 스탬프를 찍어주기 때문에 부모들도 자녀의 하루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훈육을 위한 것이 아니라 칭찬으로서 규칙 준수를 유도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이 학교 네머스 교장은 강조한다.
독일에서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교육하는 홈스쿨링을 금지하고 있다. 몇 년 전 한 부부가 이에 대해 제소했을 때 브레멘 최고행정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정에서 교육을 하면 아이 개개인에 맞는 최상의 교육방법을 선택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배울 수 있는 사회성과 의지를 관철시키는 능력, 그리고 책임감은 배울 수 없거나 약화된다.”
독일 교육의 목적이 단순한 지식 전달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독일에서는 ‘이웃과 함께 하지 못하는 최고’를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평등하고 행복한 학교생활 위한 아낌없는 지원
독일은 모든 아이들이 동등하고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매우 세심하게 실천하는 나라다.
페스탈로찌 초등학교에서는 3명의 교사가 고작 10여명의 1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한 명은 담임, 한 명은 통합교사, 한 명은 지능이 떨어지는 한 아이만을 위한 보조교사였다.
독일은 전체 인구 8090만 명 중 20% 가량인 1640만 명이 이민자 출신이다(2016 독일통계보고서). 지금도 매년 수만 명의 이민자와 그들의 자녀가 독일로 유입되고 있다. 이민자 자녀들은 우리의 중도입국자녀처럼 독일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크다.
독일은 이민자 자녀와 장애 아동, 기초학습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위해 아이 한 명당 보조교사 1명을 배치한다.
이날도 한 장애아동을 보조하던 교사는 수업시간 내내 아이 옆에 앉아 조용히 수업 상황을 설명하며 아이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고 있었다. 같은 시각 교실 밖에서도 수업을 따라가지 못 하는 아이들을 교사가 1대1로 지도하는 모습이 여러 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날 수업을 주도하던 통합교사의 역할도 인상적이었다. 최근 독일에서 그 역할이 매우 커지고 있는 ‘통합교사’는 다른 문화권의 아이들이 섞일 때 아이들 간에 위화감을 줄이기 위한 수업을 진행한다. 모두가 어우러지는 공동체를 만들려는 정부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아울러 독일의 유치원에서는 초등 취학을 한 해 앞둔 6세 아이들(포슐 그룹, Vorschule-kinder)에 대해 특별한 시간을 준비한다. 그것은 한국에서처럼 미리 한글 받아쓰기와 숫자 쓰기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새로운 학교에 적응시키기 위해 인근 초등학교를 찾아 수업을 참관하거나 초등학생들과 단체로 영화를 보러가는 등 학교생활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방식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 뒤편에는 아이들이 힘들 때 쉴 수 있도록 깨끗한 매트리스와 간단한 이불이 갖춰져 있다. 이것 역시 아이들이 급이 다른 학교로 갔을 때 틈틈이 쉬게 함으로써 심리적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공교육의 배려다.
■ 당장의 지식보다 삶의 소양 쌓아가는 곳
독일 학교들은 오후 수업이 거의 없는 반일제다. 아이들은 오전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가 기타나 댄스, 오케스트라, 수영 등 자신들이 좋아하는 예체능 활동을 한다. 독일은 수업과 교과서가 모두 무료이고 예체능 활동에도 거의 돈이 들지 않는다.
독일에서 인터뷰를 나눈 11~18세의 아이들 6명은 방과 후에 드럼, 플루트, 피아노, 스쿠버다이빙, 댄스 등을 배운다고 답했는데 프랑켄탈 시(市)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하기 때문에 무료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숙제가 있는 교재만 들고 가볍게 하교하며, 집으로 간 후 책상에 앉는 시간은 숙제를 하기 위한 것으로 대개 1시간 이내라고 설명했다.
독일은 초등 1~4학년(Grundschule, 그룬트슐레) 과정이 끝나면 대학 진학을 위한 김나지움(9년제 인문계학교), 사무직 직업 교육을 받는 레알슐레(6년제 실업학교), 공부에 다소 흥미가 떨어지는 학생들이 산업체 노동자로 일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하우프트슐레(5년제 직업교육 학교) 등으로 진학한다.
인터뷰를 나눈 학생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10세에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점이 다소 이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략적인 꿈을 모두 가지고 있었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 체력을 키우거나 악기를 배우는 등의 준비를 하고 있으며, 별다른 고민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라면 한국 아이들처럼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공부를 위해 잠을 참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독일에서는 선행학습을 요구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아이가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배워 가면 교사가 제지한다.
독일 사회는 어려운 것을 알게 하는 것을 교육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보단, 아이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알게 하는 것을 교육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교사들은 아이들 개개인의 수준과 적성, 행동적 특성을 파악해 아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칭찬하고 격려한다. 초등 4년 내내 담임이 바뀌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일에서 25년째 살고 있는 한 한국인 엄마는 “독일은 더불어 살아가는 시민역량 향상에 교육의 초점을 두기 때문에 개인의 성적을 우선시하는 한국과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며 “두 아이를 키워 낸 경험으로는 공동체적 삶과 개인의 행복 실현에 초점을 둔 교육과정이 독일 교육의 강한 힘이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해본다”고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