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한 해가 저문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하루이나 ‘해’가 바뀌는 만큼 ‘같은 하루’가 아니다. 아쉽지 않은 세밑이 없지만 올해는 더욱 그러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첫째로 다사다난(多事多難)을 떠올려본다. 인간사 일이 많아 여느 해나 정리할 때 이 단어만큼 무난하게 어울리는 말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2016년의 마지막을 하루 앞둔 날에 일면 식상하게도 다가오는 이 사자성어가 떠오르는 것은 올해가 정말 여러 가지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연초 32년만의 폭설로 인한 ‘제주섬 고립 사태’를 시작으로 재난지역 선포로 이어질 정도의 엄청난 피해를 남긴 태풍 ‘차바’까지 기상이변에 따른 자연의 시련이 잇따랐다. 부동산 광풍에 주택난과 쓰레기·교통난 등 미리 준비하지 못한 인간의 실책에 따른 피해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여기에 4·13 총선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촛불집회 등 대통령 탄핵이 보여준 민심의 준엄함까지 정치·경제·사회·문화에 굵직굵직한 일들이, 2016년에는 정말 많았다.
두 번째로 책인지심(責人之心)을 생각한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데 ‘남을 꾸짖는 엄격한 마음’을 뜻한다. 우리는 올 한해 겪었던 ‘다사다난’한 일들을 되돌아보고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한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같은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책인지심’일 것이다. 우리는 폭설과 태풍에 무기력하게 당했을 때, 치솟는 주택가격에 힘겨워할 때, 정화되지 못한 하수가 청정 제주바다로 유입될 때, 그리고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만 집중할 때,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행태를 엄격하게 판단하고, 책임소재를 찾아 나섰다.
그래서 세 번째는 서기지심(恕己之心)이다. 책인지심과 함께 쓰이는 말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용서하는 마음을 뜻한다. 도민을 비롯한 전문가·공직사회는 앞서 벌어진 ‘다사다난’했던 많은 일들의 원인과 재발방지 대책을 고심했다. 폭설 대응 매뉴얼을 마련하고, 저류지 기능 보완 용역을 발주하고, 요일별 쓰레기 배출제 등을 시행했다. 도민들은 이러한 대안 정책 시행에 따른 불편함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벌써 ‘관대한 용서’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대책은 나왔으나, 그 잘못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정책 결정을 내렸던 자들이 서기지심에 충실한 것 같다는 도민들의 지적이다.
마지막 네 번째로 선택한 것은 군주민수(君舟民水)다. 교수신문이 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로, “백성은 물이고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은 배를 뜨게도 하지만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앞서 책인지심과 서기지심은 궁극적으로 ‘남을 꾸짖는 엄격한 마음으로 나를 꾸짖고, 나를 용서하는 관대한 마음으로 남의 잘못을 용서하라’는 교훈을 말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가와 지방정부에서 발생한 정책실패 사례에선 이와 반대의 행태들이 보이지 않았는가?
관료들은 자신들 스스로에게 관대하여, 책임을 회피하고 국민과 도민들에게는 엄격하게 책임을 물어 왔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행태는 배를 뒤집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물의 힘을 준엄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4가지 사자성어로 2016년을 되돌아봤다.
그렇다면 새로운 2017년을 준비하는 단어는 무엇이 좋을까. 물의 힘은 국민이 궁극적으로 국가의 주체임을 말한다. ‘정책’은 일부 정치인, 소수 엘리트들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 스스로 결정할 수 있으며, 또 그런 권리를 가지고 있다. 배를 띄우다가도 뒤집을 수 있는 국민들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 회복을 밑거름 삼아, 가진 것이 기준이 되지 않고 국민 누구나 평등하게 1표의 권리를 행사하는 정의가 다시 정립되는 새해가 돼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새해를 준비하는 꺼내드는 화두는 ‘다시 민주주의(民主主義)’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