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다녀오겠습니다!”
“군대 다녀오겠습니다!”
  • 이종일
  • 승인 2016.1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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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남자들의 ‘술 메뉴’ 군대
낚시꾼 허풍 저리가라 수준
최고의 악몽은 군대 다시 가는 꿈

아들 입대 앞두고 만감교차
어른된다는 현실에 대한 먹먹함
많은 시간 같이 못한 아쉬움

올해도 일주일 남짓 남았다. 한해를 보내며 아쉬운 마음들이 각종 송년 모임에 분주하다. 다이어리를 보니 직장모임·가족모임·동창모임 등 다양한 자리가 사흘이 멀다 하고 잡혀있다. 그 중에는 설레며 기다려지는 만남이 있는가 하면 굳이 꺼려지는 자리도 있기 마련이다.

모임은 그 집합체의 특성에 따라 대화의 소재도 달라진다. 동창들의 모임인 경우는 동시대를 같이 겪으며 살아온 환경을 공유하므로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결혼과 출산·자녀들의 성장과정이 비슷하므로 화제의 소통이 원활하고 오랜만에 격식 없는 자유로운 대화가 오간다.

필자도 어제 고교동창들의 송년회에 다녀왔다. 가끔 모임을 갖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새삼 내 모습이 반추되었다. 이마는 훤하고 머리는 반백인 중늙은이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육두문자를 눈치 안보고 거침없이 쏟아내는 폼들이 가관이었다.

남자들 술자리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메뉴에는 뭐니 뭐니 해도 군대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최전방 근무에 특수부대 출신은 왜 그리도 많고, 화려한 모험담은 거의 베트남전쟁에 참가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단기사병, 소위 방위 출신인 필자는 이 대목에선 입을 다물고 안주만 젓가락질 하곤 한다. 여하튼 대한민국 남자들의 군대 일화는 낚시꾼의 허풍은 저리가라 수준이다.

대한민국 남자들이 꾼 꿈 중에서 가장 악몽은 군대에 다시 입대하는 꿈이라고들 하니 고달프고 힘들었던 예전의 군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본인의 군복무나 자식의 군대 회피 문제로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의 신상에 발목을 잡는 사건이 종종 발각되어 사회문제가 되곤 한다.

한창 젊음을 펼칠 꽃 같은 시절을 병역의 의무로 보내야하는 현실을 피해 개인의 안전과 사욕을 채우는 짓은 우리 국민에게는 무엇보다도 민감한 사안이다. 오죽하면 대한민국 부모들이 가장 참을 수 없는 불공평 행위가 군대비리와 입시비리라고들 하지 않는가?

동창들도 세월이 흘러 어느덧 자식들이 군복무 중이거나 입대를 하는 처지를 맞이하게 됐다. 필자도 다음 달에 아들의 입대 날짜를 받고 보니 살아오면서 아직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대학을 보내며 지켜봤던 안타까움과는 차원이 다른 먹먹함이 대견함을 뒤로하고 밀려온다. 그 먹먹함의 근원은 고생스런 군 생활에 대한 걱정보다는 아들이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현실인 것 같다.

아직 어린 아이로 느껴졌던 감정을 정리하고 국가의 안위를 수호하는 어엿한 장정이 된 것이 반갑지만은 않음을 숨길 수 없다. 부모에게 좀 더 기대고 따르는, 철없는 아들이 그리워 질 것 같다. 군복 보다는 아직 교복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을 애써 지우며 많은 시간을 같이 못한 미안함에 먼 하늘을 올려다본다.

새해가 밝으면 아들 입대 기념 여행을 제주도로 다녀오기로 했다. 모처럼 어머니를 모시고 온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을 우리가족이 가장 사랑하는 제주도로 정했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 온지 엊그제 같은데 아들의 입대 환송여행을 가니 감회가 새롭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족이 가장 많이 여행 한 곳이 제주도이고 추억도 많은 곳이다. 아들과 함께 제주도 막걸리에 흑돼지 먹을 생각에 침이 고이며 순간 군대 생각은 뒷전으로 밀려나니 이 무슨 조화인가!

중국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뮬란’이라는 애니메이션은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외동딸이 남장을 하고 입대하여 전장에 나가는 이야기가 바탕이다. 죽음을 무릅쓴 자식의 효와 국가에 대한 충정을 주제로 모험을 펼치며 해피엔딩을 이루는 이야기는 단순한 재미 이상의 내용을 시사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아마 자식을 대신해서 군복무를 하게 해준다면 지원할 아버지가 제법 있을 듯하다. 필자도 한 2년 규칙적인 생활로 건강도 챙기고 책도 보고 할 겸, 아들 대신 갈 수 있다면 갈 용의가 있다. 봉급도 많이 올랐다는데…

곧 빡빡머리로 “군대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아들의 인사를 어떻게 받아야 할지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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