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난영화와 너무 닮은 우리 현실
무능한 정부·부패한 정치인
그래도 희망은 촛불민심 국민들
이제 현명한 지도자를 선택하자
지연·학연 아닌 ‘사람’을 보자
잘못했다간 국민들 ‘도룡뇽’ 전락
인류의 불행과 희망의 시작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알려진 판도라상자. 불을 얻게 된 복(福)만큼의 재앙을 인류에게 보내준 상자다. 인간은 마침내 과학의 힘으로 원자력이라는 꺼지지 않는 불을 얻었다. 그래서 ‘재앙’도 커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영화 ‘판도라’를 봤다. 영화 속에선 발전소장이 노후한 원전의 문제점을 파악, 건의했으나 묵살되고 만다. 어렵사리 대통령에게 보고서가 전달되지만 해결은커녕 소장은 한직으로 밀려나고 발전소에 문외한인 소장이 부임한다. 지진으로 원전이 폭발, 아비규환인 상황에서 소장과 피폭 당한 원전기술자들이 목숨을 걸고 발전소의 제2폭발을 막아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낸다.
우리나라 곳곳에 이러한 판도라의 상자가 널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6년 대한민국은 무능한 정부에, 국민들의 눈을 가리는 언론과 권력 잡기에 혈안이 된 정치인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실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래도 위안이라면 국민들이다. 부패를 파헤치고 나라를 바로 잡으려 국민들은 행동하며 애쓰고 있다.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매주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그 촛불이 바로 희망이다.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생산 활동에 참여하고, 문명적인 삶을 누리며, 의지를 세우고 사고하면서 언어로 소통하는 삶이 인간의 조건이다.”라고. 그리고 사유하지 않으면 누구나 악을 행할 수 있다고도 했다.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은 국민들과 소통하지 않고 많은 악을 저질렀다. 국민들의 행복이나 안전은 뒷전으로 두고 분단조국의 현실을 정치권력 유지에만 이용했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기 위해 언론을 탄압하고 장악했다. 권력의 힘을 이용해 창작활동을 방해하고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등 역사마저 바꾸려고 하고 있다. 국민들의 사유하는 힘을 잃게 하려는 의도다.
영화 ‘터널’에 나오는 대사가 떠오른다. 부실공사로 무너진 터널에 갇혀 있는 사람을 구조하지 않은 채 사진 찍기에 혈안이 돼 있는 언론인과 구조를 외면하는 책임자들에게 구조대원 중 한 명은 울분이 터져 외친다. “저 안에 갇혀 있는 게 도룡뇽이 아니고 사람이라고요. 자꾸 까먹는 것 같아서 그러는데 저기 사람이 갇혀 있어요.”
도룡뇽 취급을 당했던 아픈 상처의 사람들이 대한민국엔 너무나 많다. 정부에서 허가해 준 가습기 살균제를 쓰다 자식과 아내를 잃은 사람들, 세월호에 갇혔던 어린 영혼들, 물대포에 쓰러진 농부 등 너무나 억울한 사람들이다.
더 이상 국민들이 도룡뇽 취급을 당해서는 안된다. 청와대나 여당이 권력이어선 안된다. 국민이 힘이고 권력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얼마나 위대하고 깨어있는가는 촛불집회를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더 이상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고 국민들이 연대하여 공적인 영역을 채워가고 있다.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국민들은 올바르게 사유하고 있다, 국민들이 인간의 조건을 갖춰 나가고 있는 것이다.
더 사유해야 한다. 그리하여 지극히 상식적이고 현명한 리더를 뽑아야 한다. 판도라상자 같은 원자력발전소의 꺼지지 않는 불도 과감히 꺼버릴 수 있는 혁신적인 리더를 선택해야 한다. 국민이 ‘힘이 되고 권력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과거를 청산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은 또 다시 도룡뇽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수동적으로 지켜보다가는 언젠가는 폭발하는 원자력발전소에 들어가 목숨을 내걸고 판도라의 상자를 닫아야만 하는 국민이 될지도 모른다.
이제는 설득과 합의를 이끌어가는 리더를 뽑자. 맹목적 지지가 아닌, 지연과 학연의 지지가 아닌, 향수나 그리움이 아닌, 말과 언어를 듣고 보고 가려야 한다.
그동안 얼마나 소신을 가지고 일했는지, 불의에 맞서서 바른 말과 행동을 했는지, 작은 성과를 직접 만들어가며 자수성가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인지 잘 선택하자. 국민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세워줄 리더가 누구인지 잘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