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작가들과 잦은 동행
제주에 감탄하는 모습 보며 뿌듯
자연 차단하는 인공물에 불만
샤려니 가는 1112번도로 대표적
경치 감탄할 순간도 막는 통들
‘여정의 낭만’ 위한 정책 절실
요즘 핸드폰 기능에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제주를 찾은 외국 작가들과 언어 소통의 어려운 부분을 해결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국제아트페어 참여(뉴욕·폴란드) 작가들과도 그랬고, 요즘은 3개월 동안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여 작가들(프랑스·중국·일본)과도 핸드폰 하나 믿고 ‘동행’하고 있다. 제주의 서쪽에서 남쪽으로, 동쪽에서 바다로 걷고 오르기를 반복하며 제주의 자연을 담아내고 있다.
작가들이 행복한 만큼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필자 또한 행복한 미소가 그치질 않는다. 그것은 외국 작가들이 푹 빠져있는 이 자연, 제주의 주인이라는 뿌듯함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하루는 레지던시팀 작가들이 성산일출봉을 오르고 싶다는 말에 그곳으로 가는 코스를 생각해봤다. 가까운 길보다 제주를 좀 더 느끼게 하며 데려가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10월 뉴욕·폴란드 작가와 함께 사려니숲을 찾아 걷는 내내 길게 호흡하며 숲의 맑고 달달한 공기를 맘껏 마시던 그들의 행복한 얼굴이 떠올랐다. 이번엔 사려니숲을 걷지는 못하지만,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에 선정된 바 있는 사려니숲 진입로인 1112번 도로를 타고 일출봉까지 달리기로 했다.
울창한 삼나무숲길을 따라 창문을 열고 달리며 피톤치드의 향과 함께 제주의 바람이 전해주는 감성의 소리를 통해 온몸으로 또 다른 제주를 느껴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1112번 도로는 5·16도로 산천단 남쪽 8㎞ 지점에서 조천읍 교래리까지 6.8㎞의 굽이굽이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이어지는 삼나무숲길 드라이브코스다. 영화·드라마·CF에서도 단골로 등장하는 ‘유명한’ 도로다.
사려니숲길이 생기기 전부터 이 도로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었던 내가 지난 10월에는 사려니숲길을 걷겠다는 생각에 도로를 무심코 스쳐 버렸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그것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아름다운 도로에서 기념사진을 찍겠다던 외국작가들을 위해 잠시 주차할 곳이 없었다는 점이다.
도로 양쪽으로 주황색 통들이 흰 줄에 엮여 길게 늘어서 있었다. 사려니 숲길을 찾는 탐방객들 주차로 몸살을 앓고 나서 주차장을 확보해놓고 길가에는 주차하지 말라는 표시로 임시 가설물을 설치해 놓은 듯 했다.
비상등을 켜놓고 잠시 ‘불법정차’ 후 기념사진 몇 컷을 찍고 서둘러 차로 오르는 작가들의 표정들이 내 맘처럼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카메라 각도를 돌려봐도 주황색 통들이 배경에 들어와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아름다운 산속 도로에 주황색 통들을 세워놓았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든 듯 했다. “도로공사도 없는데 왜?”라는 물음에 부끄러움마저 느꼈다.
숲을 찾는 사람들의 불법주차로 인한 교통 혼잡 방지 차원이라곤 하나 주차장 등을 제대로 만들고 대비를 못한 우리의 입장일 뿐이다. 제주를 찾는 이들이 보고, 느끼고 즐길 권리를 빼앗는 사실은 간과되고 있다.
통들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한 달 전에도 있었다. 그 기간에 그곳을 찾았던 이들은 손해를 본 것이다. 외국작가들이 다시 제주를 다시 찾아 아름다운 삼나무숲길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대책이 마련되길 기원해본다.
현대사회에서 차는 이제 필수적인 교통수단이다. 그 때문일까? 언제부턴가 우리의 운전습관은 현재위치와 목적지만 존재할 뿐 오가는 ‘여정에서의 낭만’은 보기가 힘들어졌다. 그러나 제주에는 잠시 차에서 내려 걷고픈 생각이 드는 아름다운 도로들이 많다. 그만큼 제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같은 장소를 가더라도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기에 다른 생각과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관광지를 만들기 위한 스토리텔링 개발로 단순한 관광지로 전락하는 듯 한 제주의 자연이 아쉽다는 외국작가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자연을 통해 제주를 바라볼 수 있는 감성적인 제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는 한 작가의 말 또한 잊지 못한다.
하얀 눈이 내리는 날 다시금 찾을 것이다. 첫 눈을 기다리는 설렘을 주는 1112번 도로를 나는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