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왜곡·친일 축소·박정희 강조
학계 집필한 새로운 교과서 필요
최근 몇 주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박근혜 대통령과 사회 지도층에 대한 실망감으로 전국이 ‘하야 촛불’로 물들었다. 참으로 개탄스런 것이 대한민국의 오늘의 현실이지만 촛불을 들며 다시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우려는 국민들의 모습을 보며 희망을 본다. 수능이 끝난 후 “이제 우리가 앞장서겠다”며 촛불을 들고 나서는 고3 학생들과 중고생들, 동맹휴업으로 나서는 대학생들을 보며 나라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 본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의견 개진’을 두려워하는 어른들도 한편에는 있다. 한 가지 교과서로만 역사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다가, 교과서의 내용 또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편향으로 기술했으니 말이다.
지난달 28일 교육부에서 공개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은 제주도민들과 4·3유가족들을 분노케 한다. 4·3을 단 세 문장으로 기술하여 역사적 성격을 축소함은 물론 사건의 발생 원인을 남로당 무장봉기의 진압으로 설명하고, 4·3사건으로 인해 총선거가 실패했음을 부각시키는 등 4.3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4·3특별법과 정부의 진상보고서는 4·3 사건을 ‘국가공권력에 의한 수만 명의 희생’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기존 입장과 배치되는 자기 모순적 교과서가 아닐 수 없다.
4·3은 좌우 이념 대립과 갈등이 심각한 해방정국 하에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의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무고한 제주도민들 수만 명이 공권력에 의해 희생당하고 수많은 마을이 잿더미가 되어 엄청난 재산피해를 일으킨 세계 역사상 그 유사 사례를 찾기 어려운 매우 참혹한 역사적 비극이다. 이러한 역사를 몇 마디 문장으로 마감하고, 국가 공권력으로 인한 피해를 감추고 특정 집단의 탓으로 서술하고 있는 왜곡된 교과서를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보고 배워야 하는가?
4·3사건 이외에도 박근혜 정부의 국정 역사교과서는 역사학계와 교육계가 우려했던 바대로 전문성이 없는 비 역사학 전공의 뉴라이트 계열학자들이 상당수 현대사 서술에 참여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들에 의해 친일파 행위가 대폭 축소되는가 하면 박정희 정부의 성과가 강조되는 내용들로 채워진 것이다.
현장 검증본은 박정희 시대를 9쪽에 걸쳐 상세히 언급하면서 경제성장의 성과를 부각시키고 유신체제, 새마을운동을 미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뉴라이트 등 보수 일각에서 꾸준히 주장해 온 건국사관이 반영되면서 대한민국 수립에만 집착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국정화 추진 의도와 진행 방식이 반헌법적이며 비교육적인 정책이므로 검토의 대상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보수성향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조차도 국정교과서를 수용할 수 없다는 논평을 발표할 정도로 이념과 진영을 넘어서 비판이 거세다.
국정교과서로 획일화된 역사 학문을 강요할 경우 문제는 앞으로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다음 집권하는 정부가 친일과 독재미화로 교과서가 잘못됐다고 판단하고 국정교과서를 다시 바꿀 것이다.
결국 이런 식으로 5년마다 정부 성향이 바뀔 때마다 국정교과서가 만들어진다면 학생들은 5년마다 다른 역사공부를 하게 된다. 정치적 논리로 학생들만 죽어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규제하는 국정 역사교과서보다는 학계가 주도하여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는 민주주의와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국가권력을 사유화하려는 또 다른 국정농단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시대착오적인 국정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왜곡하고 감추려는 시도를 당장 멈추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미래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은 당장 하야하고 국정교과서 또한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당장 폐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