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해온 곳 제주도 구좌읍
환경 아름답지만 낯선 ‘괸당’ 공동체
배타적으로 다가오는 그룹핑
2013년 ‘바당1미터음악회’ 시작
같이 박수치며 공감적 유대
내년도 기대, 이 모두 제주에 온 덕
잘 살던 곳을 떠나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생활해 본 것이라면 군대시절과 호주출장기간 동안이 생각난다. 첫 번째는 국민으로서 의무였고, 두 번째는 직장에서 임무였다. 자의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태어난 도시에서 줄 곳 자란 사람이라면 학연·지연 등의 인연으로 자연스레 그룹핑(grouping)이 된다. 그리고 취미에 따라서 이런 저런 모습으로 집단을 이루기도 한다.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라면 자다가도 뛰어나가게 마련이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유주의가 다름 아니다.
살던 곳을 떠나는 이사(移徙:옮기는 일)와 이주(移住:옮겨서 삶)의 개념차이를 생각해보면 굉장히 큰 것을 깨닫게 된다. 단순히 거주지 이동의 범주로만 볼 수 없는 것이 제주이주의 삶이다.
생활터전을 송두리째 뽑아 옮긴 처지이기에 ‘새로운 터전’ 제주에서의 이주생활 자체가 녹록치 않다. 생활환경과 자연환경이 편안하고 아름다워서 이주해 놓고 새로운, 아니 그동안 잊고 살았기에 낯설게 된 지역공동체라는 개념을 마주하게 된다.
강하게 연결된 타 공동체를 마주해 본 적이 없을 대부분의 도시민들에게 이 모습은 매우 배타적으로 다가온다. 제주에서 ‘괸당’을 접해 본 사람이라면 쉽게 그룹핑된 사람들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면 쉽게 느낄 수 없는 공동체를 파악한 순간이다.
정치적 용어로서 집단주의와 혼용될 수 있는 ‘공동체’이지만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자유주의적으로 성장한 경우라면 공동체라는 것은 매우 생경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공동체는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의 입장을 절충하여 중도적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어촌계에서 해녀로 대표되는 공동체주의는 ‘미덕’ 혹은 ‘덕성(virtue)’이라 불리는 가치를 중시하는 인간중심적 이론을 실천한다. ‘베테랑’ 해녀들이 잡아 온 해산물을 이제 막 시작한 ‘초보’ 해녀의 모자란 살림망에 조금씩 모아서 채워준다. 조직이론의 대가인 미국의 사회학자 아미타이 에치오니(Amitai Etzioni) 등이 주창한 ‘공동체주의로서 자유주의와 달리 개인의 소득 자유보다는 평등의 이념· 권리(right)’보다는 ‘책임(responsibility), 가치중립적 방임보다는 가치판단적 담론’을 중시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구좌읍 세화리에 ‘둥지’를 틀어 낯선 괸당에 둘러싸인 제주의 삶이지만 ‘바당1미터음악회’라는 예술 활동을 바탕으로 가능성을 이어가고 있다. 공감적 유대가 이루어지고 상호간 정서차이를 극복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확인했다. ‘예술’이 공동체주의가 근대 개인주의의 보편화에 따른 윤리적 토대의 상실, 즉 고도산업 사회화에 따른 도덕적 공동체의 와해와 이기적 개인주의 팽배 현상 등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는 솔루션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바당1미터음악회’는 2013년 3월 시작됐다. 첫 회 제주어로 노래하는 뚜럼브라더스를 시작으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 세션맨 와타나베 유키오, 홍대여신 홍혜주, 장기하와 얼굴들의 미미 시스터즈, 파리에서 찾아와 준 피에르 & 엘자, 팝재즈싱어 시나, 재즈피아니스트 유승호, 플라멩코싱어 소냐, 인디싱어 달리스, 탱고 세계챔피언 지노 & 유니, 춘향가와 심청가 무형문화재 이수자 현미, 제주지역 버스킹협동조합 더 질레, 엄청난 드럼세션을 보여줬던 마인드폴리까지 괄목할 만큼 많은 이들이 음악회에 기꺼이 동참해 줬다.
그동안 22회까지 치러내면서 고민하고 목적한 것은 다름 아닌 공동체에 대한 이해와 소통, 그리고 참여였다. 음악을 통한 이완된 심리는 날카로운 배타적 감성을 누르고 포용을 생성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의 관심과 도움으로 내딛고 추진했던 음악회에서 많은 뮤지션들이 재능을 자랑할 수 있었고 열정적인 연주에 감동한 주민들은 많은 박수를 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주민들과 함께 즐거워 할 2017년을 생각해보니 또 다시 가슴이 뛴다. 살아있는 가슴을 느끼는 오늘도 행복하다. 이런 것은 순전히 제주에 이주한 덕(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