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 외적이미지에 호응
정치인들 허상의 이미지로 현혹
박근혜 대통령도 국민 속인 셈
원칙·소신의 여성지도자로 ‘오해’
포장된 이미지 실체 드러나
아직도 화려한 옷 걸친 줄로 착각
이미지란 우리가 사람이나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이다. 이미지는 사실이나 실체와 다를 수 있다. 가상적인 이미지를 마치 실제의 모습처럼 믿을 수 있다. 표정·용모·복장·메이크업·말투·태도 등 외적인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 내적인 가치관·신념·이상·책임감·성실감 보다 더 크게 보여 질수 있다.
대중들은 화려한 허상, 즉 외적이미지에 호응한다. 정치가들은 이를 너무나 잘 알기에 최대한 ‘허상의 이미지’를 포장하고 대중들의 눈을 현혹한다. 권력자들은 대중의 인기나 지지도를 높이기 위해 언론을 많이 활용한다.
얼마 전까지 매스컴을 통해서 알고 있던 박근혜 대통령의 이미지는 “나는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라고 스스로 밝힐 정도로 ‘자나 깨나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었다. 근엄한 미소와 단아한 패션, 천편일률적인 행사와 회의·시찰·격려하는 장면들은 항상 절반의 넘는 국민이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여성 정치지도자로 인식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분노로 가득 차있다. 실망과 허탈함에 의욕마저 상실한 상태다. 200만명에 가까운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한 목소리로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들은 이제 범죄 피의자로 전락한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메르스나 세월호 사태에서 여러 가지 ‘의심스런’ 정황들이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원칙과 신뢰를 줬던 대통령의 이미지는 한 순간에 무너졌다. 그동안 국민들은 포장된 거짓 이미지에 속았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논두렁에 앉아서 농민들과 막걸리를 마시는 사진으로 소탈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만들었고 가족사진으로 단란한 가족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국민들은 이런 사진을 왜 찍는지 의도도 모르고 그냥 보이는 대로 생각 없이 받아들이던 시절이 있었다. 우매한 국민들은 가난을 벗어나게 해주고 끼니를 해결해 주는 은인인 듯 믿고 받들며 눈 뜬 봉사가 돼갔다. 육영수 영부인을 현모양처의 표본으로 만들어 국민들의 국모 이미지로 지지와 존경을 받게 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의 사례도 대중들이 얼마나 이미지에 쉽게 현혹되는지 보여준다. 1960년 인류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 후보 TV토론회가 미국 TV와 라디오를 통해 생중계됐다. 여론은 베테랑 정치인 닉슨의 압승을 확신했지만 대중들은 TV화면에 비쳐진 무명의 40대 신인 정치인 케네디를 주목했다. 케네디는 젊은 지성과 패기, 경쾌한 이미지를 강조한 메이크업과 적절한 제스처와 자신에 찬 목소리로 호감을 이끌어내며 승승장구하던 닉슨의 지지율을 역전시키고, 훌륭한 이미지 메이킹의 효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케네디는 당시 새로운 미디어인 TV와 미국의 언론을 통해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돈과 권력·명예까지 거머쥐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잦은 외도와 약물 중독으로 인한 섹스중독증은 대중 앞에 나갔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듯 대중들은 언론을 통해 보여지는 것을 믿기 때문에 허상의 이미지로 대중의 눈을 가리고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퇴임을 앞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청소부와 주먹으로 파이팅 인사를 나누고 어린이가 자신의 머리를 만져 볼 수 있게 고개를 숙여주는 사진을 보면서 ‘저게 바로 내적이미지의 외적 승화’라고 느끼며 부러워했다. 아주 작은 일상의 사진 1장이었지만, 국민들과 소통을 잘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촛불함성과 함께 언론에 가려졌던 박 대통령에 대한 허상의 이미지가 이제는 완전히 발가벗겨졌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 국민들 수준도 높아졌고 소통 방식도 엄청나게 변하고 있다. 어린 시절 동화에서 읽었던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국민들은 대통령이 벌거벗고 있음이 다 보이는데 아직도 본인은 화려한 옷을 걸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대통령은 누구보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이고, 품격이 있어야 한다. 여성으로서 개인의 이미지보다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먼저 생각하는 국가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