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문화자녀 바이올린 교실 8년째
시작 당시 아이들 좌충우돌
이젠 ‘오빠·언니’ 동생들 멘토 역할
질서 잡은 건 머리 맞대 만든 원칙
자기 잘못은 자기 책임으로
시행착오 줄일 장기정책 등 필요
바이올린 교실을 시작한지 8년째다. 처음 시작할 때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은 고등학생, 대학생으로 성장했다. 의젓한 형, 오빠로, 다정한 누나, 언니가 됐다. 새로 들어온 동생들에게 친 형제 자매처럼 멘토가 되어 바이올린 기초를 가르치기도 한다. 친구들과의 갈등이 있는 동생들을 위해 상담도 해주고 있다.
성숙한 행동을 해주는 이 친구들도 처음에는 좌충우돌이었다. 그러나 바이올린 교실을 통해 여러 가지 다양한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고맙게 잘 성장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바이올린 두 세 개쯤 깨지거나 활이 부러지는 것은 보통이다. 수리비 감당이 안 될 정도다. 양보하기 보다는 서로 욕심을 부리다가 싸우기 일쑤다. ‘똥고집’을 부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장시간 떼를 쓰기도 한다.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들이 함께 모여서 연주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더욱이 한국과 일본·중국·베트남·우즈베키스탄·라오스·필리핀·캄보디아·대만·태국 등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모여서 하모니를 이룬다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우리들만의 규칙과 원칙을 정했다. 바이올린 연습을 할 때 활이 부러지거나 수리를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원인자 본인이 수리비를 부담하기로 했다. 둘이 싸우다가 활이 부러지는 경우는 둘이 50%씩 내야한다.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2권 독서’ 원칙을 정했다. 그렇지 않으면 게임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기본 2권의 책을 읽는다.
바이올린 연습이 끝나면 점심 식사를 하고 귀가를 한다. 음식을 너무 많이 담는 아이들이 있어서 음식물을 남길 때는 벌칙으로 1만원을 내기로 했다. 벌금은 부모님 도움 없이 반드시 자기 용돈으로 지불하기로 했다.
이후 많은 긍정적 변화가 찾아왔다. 싸우다가도 먼저 화해를 하려고 하는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잘못 했을 때는 부모님께 의존하기보다는 자기 용돈으로 처리한다는 원칙을 지키려 했다.
그런데 지난주 토요일 사건이 발생했다. 초등학교 1학년 K군과 H양이 싸우다가 바이올린을 파손한 것이다. 덜컥 겁이 난 두 아이는 서로에게 잘못을 전가하며 울기 시작했다.
K군은 연습이 끝나고 식사시간인데도 밥을 먹지 않고 울먹이고 있었다. 바라보는 내내 걱정이 됐다. 초등학교 1학년이지만 규칙은 지켜야 하는데 어찌하면 좋을까? 혹시 돈을 모으려고 나쁜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등등.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함께 있던 K군 엄마가 아들을 달랬다. “잘못했으니 바이올린을 수리해야지?” 그래도 여전히 K군은 시무룩하다. 밥도 먹지 않고 계속 “엄마 바이올린 고치는 값이 얼마예요?”하고 물었다. 엄마는 “아직 모르지. 수리해봐야 아니까 어서 밥 먹어야지?” 그때서야 겨우 먹는 둥 마는 둥 엄마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이는 집에 가서도 계속 바이올린 수리비를 물으며 자신의 용돈을 계산했다고 한다.
K군의 엄마는 평소와는 달리 너무 조용한 아이들 방에 들어가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K군이 동생 책상을 깨끗하게 치워 놓은 것이다. 엄마의 화장대 위도 잘 정리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K군의 엄마는 기특해서 용돈을 주었다고 한다. 신난 K군은 “엄마 친구와 싸워서 미안해요. 난 엄마한테 혼날까봐 무서웠어요!”라고 했다고 한다. K군은 지난번에 밥을 덜지 않고 먹다가 반 이상 남겨서 용돈 1만원을 낸 경험이 있었다. 물론 그 돈은 엄마에게 돌려 드렸지만 K군은 용돈을 낸 것을 너무나 아까워했다고 한다.
K군과 함께 싸운 H양은 상황이 완전 달랐다.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돈이 없다고 떼를 쓰기도 하고 앞으로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 작은 하나의 사례가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함을 느끼게 한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학교생활 부적응, 가족이나 이웃 간의 불화 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도 많아지고 있다. 이들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 수립과 실천이 절실해 보인다. 그러면 ‘멘토’인 형과 언니들보다 조금은 덜 시행착오를 겪으며 고맙게 잘 성장해나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