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0년 벼농사·기존 생태계도 중요
‘언제 모습으로 복원’에 답도 없어
지난 2012년9월 제주에서 세계자연보전총회(WCC)가 열렸다. 세계자연보전총회 지원특별법까지 만들며 수백억원을 쏟아부으며 진행된 행사인데도 아직껏 제대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아무튼 당시 제주선언문과 함께 세계환경수도 건설, 곶자왈 보전과 활용, 해녀보존, 국제보호지역 통합관리, 하논분화구 복원 등 제주형의제 5개가 채택됐다.
제주형의제 가운데 우선 하논만 언급하고자 한다. 하논을 적지 않게 드나들며 느꼈던 생각들이 많기 때문이다. 2002년 당시 “약 4000억원의 국비를 확보, 하논분화구를 복원하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복원에 대한 시각 차이를 좁힐 틈도 없이 4년이 지나면서 여건들이 급격히 변해버렸다. 정부가 국비 지원에 난색을 표하는 사이 서귀포 땅값은 당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뛰어, 사유지 매입이 거의 불가능해져 버린 것이다.
현재 하논은 벼가 베어져 비어 있는 논의 상태다. 내년 봄에도 모내기가 이뤄질지 지금은 알 수가 어렵다. 전라도 고창에서 들어와 10년 전부터 하논에 벼농사를 짓는 부부가 건강하면 다행이지만. 3년 전부터 이들을 만나 같이 수확한 쌀로 밥 먹고 모내고 벼 베기를 하면서 ‘하논의 가치’를 새롭게 알게 됐다.
그래서 하논은 논농사가 지속돼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있다. 고문서에 의하면 약 500여년 전 조선시대 하논에서 논농사가 시작,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갑자기 물을 저장하여 호수를 만드는 것이 복원일까?’하는 의문에 대한 답이다.
현재 도내에서 벼농사를 짓는 곳은 하논이 유일하다. 과거에는 대정·한경·안덕·강정에서도 논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제주에서 마지막 논이 바로 하논이다.
하논은 제주도의 과거 화산활동과 기후·식생 등에 관한 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한반도의 유일한 마르형 분화구라고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금은 분화구 바닥은 논, 나머지는 대부분 과수원으로 조성돼 있으며 곳곳에 관리사 등 무허가 건물들이 즐비하다.
따라서 하논분화구는 복원사업을 한다며 새로운 토목공사를 하기보다는 시민들과 함께 환경교육·생태기행·생태계 모니터링, 수질 및 토양오염원 차단 등의 활동들이 다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그러는 사이 많은 도민들이 바람직한 복원 또는 활용 방안이 무엇이지 해답을 찾게 될 것이다.
지금은 비료와 농약을 이용한 관행농법으로 토양 및 수질이 오염되고 있어 개선할 필요가 있다. 과수원을 무농약으로 운영하고 벼농사 또한 저농약과 무농약으로 지어서 하논에서 천지연을 거쳐 바다를 오갔던 동남참게와 뱀장어가 다시 돌아오는 곳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천연기념물인 노랑부리저어새, 매와 멸종위기식물 2급인 삼백초, 희귀종인 수염가래꽃, 물질경이가 관찰되고 있다.
이런 희망으로 올해 드디어 시작했다. 120명의 회원을 모아 약 2000평의 논을 무농약으로 벼를 재배, 수확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면적을 2배로 늘릴 계획이다. 서귀포시도 과수원을 매입해 탐방안내소를 만들려 하고 있다. 잘된다면 과수원도 무농약 귤 재배가 시작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리·우렁이·미꾸리 등의 방사를 통해 자연농법으로 벼농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생산된 쌀은 행정기관 및 단체에서 매입,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생태계보전협력금 제도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자연공원·생태경관 보전지역·습지보호지역·야생동식물보호구역 지정도 필요해 보인다.
진정한 복원에 대한 답은 없다. 어느 시점이 ‘원래의 모습’인지 인위적인 결정일 수밖에 없다. 자연에 위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가는 과정이 곧 복원이 아닌가 판단된다. 섣부른 호수복원은 500년 이상 이어온 하논의 지명과 함께 논을 기대어 사는 수많은 생명들을 쫓아 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