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잘못된 인연’
대통령의 ‘잘못된 인연’
  • 한경훈
  • 승인 2016.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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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실세 농단’ 국정 파탄 지경
朴 “최씨 일가와의 인연 끊겠다”
촛불 든 성난 민심에 뒤늦은 후회

국민들 배신감 정권퇴진운동 추동
대통령은 거짓 사과담화만 되풀이
진솔한 사죄가 사태 해결 첫걸음

“우음수성유(牛飮水成乳), 사음수성독(巳飮水成毒)” 같은 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는 뜻이다.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이 쓴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에 나오는 말이다. 원래 물에는 우유도 독도 없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만나는 인연(因緣)에 따라 우유도 되고, 독도 되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교류 상대방에 따라 인연이 유익한 우유가 될 수도, 해로운 독이 될 수 있다. 어떤 인연을 만드는가는 본인들이 하기에 달렸다.

최근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대통령 권력을 등에 업은 사인(私人)이 국정을 농단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사태의 근저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씨 일가와의 질긴 인연이 자리 잡고 있다. 대통령이 절친과의 단순 교류를 넘어 최씨의 국정 농단을 묵인했거나 조장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청와대가 아무런 직책이 없는 여인네에게 대통령 연설문과 외교안보 및 국가 기밀을 유출한 정황이 포착됐다.

박 대통령과 최씨 일가의 인연은 우리 사회에 큰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 비선실세의 갖가지 전횡 의혹이 연일 터지고 있다. 민주국가의 공공성은 무너지고 권력은 사유화 됐다.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한탄한다.

불행의 시작은 박 대통령이 최씨 일가에 지나치게 의존한 데 있다. 박 대통령은 사리에 밝지 못했고, 최씨는 탐욕스러웠다. 여기서 사고가 터졌다. 박 대통령 임기 내내 ‘비선실세’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면 관계를 청산 할만도 한데 그는 무감각했다. ‘피보다 진한 물’이 계속해서 국정을 농단했다.

이들의 인연은 자신들에게도 ‘독’이 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불명예 퇴진할 위기에 처했고, 최씨 일가는 풍비박산 직전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공(公)·사(私) 간 중심을 잡지 못한 박 대통령 책임이 크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관계는 ‘잘못된 인연’이 됐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대국민 사과 담화에서 40년 동안 이어진 최씨 일가와의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각오를 비쳤다. “이미 마음으로는 모든 인연을 끊었지만 앞으로 사사로운 인연을 완전히 끊고 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뒤늦은 후회다. 박 대통령이 최씨에게 기대어 한 비정상적 국정운영은 사회 전반에 두고두고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들은 지도자를 잘못 뽑은 것을 자책하고 있다. 대선(大選) 전 박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는 ‘원칙과 신뢰’였다. 최순실 사태로 이는 가면임이 드러났다. 박 정권 아래서 민주정부 시스템은 장식으로 전락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박 대통령의 해명은 진솔하지 못했다. 원칙과 신뢰는 온데간데없다. 국민들은 속았다. 성난 민심이 박근혜 퇴진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는 낭패감과 배신감이 행동을 추동했다. 중·고등학생까지 촛불집회에 참여한다. 부패·무능 정권에 국민들이 매서운 매를 들었다.

박 대통령은 국민과 역사 앞에 사죄해야 한다. 진정성 없는 사과는 사태를 어렵게 할 뿐이다. 대통령은 검찰 수사와 관계없이 문제의 전모를 진실하게 밝혀야 한다. 이것이 현재의 국가적 난국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이다. 박 대통령은 2차 대국민 사과 담화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무엇으로도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드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고 말했다. “나는 몰랐다. 그러니 잘못이 없다”는 것으로 읽혔다. 박 대통령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이 되풀이 됐다.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 절망감까지 느꼈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 때 잘못된 행위를 공개하지 않고 숨기며 거짓말을 한 것이 드러나 결국 하야(下野)했다. 박 대통령이 지금의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같은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 위기 탈출 방안에 골몰하고 있을 박 대통령이 새겨야 할 격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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