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비엔날레’ 출발 전 돌아봐야 할 것들
‘제주비엔날레’ 출발 전 돌아봐야 할 것들
  • 송경호
  • 승인 2016.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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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비엔날레 전성시대
제주 신설 추진 소식 반가워
문제는 공공성·예술성 길항관계

지원하되 간섭 않는 원칙 세워야
따라하기·닮아가기 안돼
구체적 제주적인 것 천착 바람직

올 가을은 전국이 여러 비엔날레로 떠들썩했다. 광주와 부산, 청주 비엔날레가 비슷한 시기에 막을 올렸다. 창원도 조각비엔날레를, 대구는 사진비엔날레를 열었다. 서울에서도 9회째 맞는 SeMA비엔날레가 지난 9월 일찌감치 선뵀다. 전주도 첫 번째 ‘세계한국학’ 비엔날레 개막식을 가졌다. 트리엔날레인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5) 역시 한창 진행형이다.

바야흐로 비엔날레 전성시대인데, 때마침 제주에서 날아든 비엔날레 추진 소식은 반가웠다. 제주라고 못 할 거 없다. 오히려 때 늦은 감이 있다. 제주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단연 하늘이 준 아름다운 자연유산에다 제주 고유의 문화예술 자산이기 넘쳐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지난 5~6년 새 자발적으로 창작 공간을 제주로 옮긴 수많은 이주예술가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물론, 비엔날레를 연다고 도지사의 문화정책 비전(?)이 속히 이뤄지는 건 아니다. 비엔날레가 그 무슨 ‘성장 동력’이 되는 것도 아니다. 되레, 비엔날레가 그런 쪽의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되며, 그러려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제주비엔날레 소식을 접하며 드는 걱정은 바로 이 지점이다. 국내 대부분 비엔날레는 나라, 또는 자치단체가 제공하는 공적자본에 기대 명줄을 유지한다. 돈을 대는 쪽은 당연히 ‘공공성’을 앞세우며 ‘관리감독권’을 고수한다. 반면, 비엔날레의 기획자 등 일꾼들은 ‘예술성’을 떠받들며 ‘자율과 독립성’을 주장한다.

이 둘은 시시각각 부딪히거나 타협하며 길항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길항관계 유지는 쉽지 않다. 보이지 않는 내부 갈등도 허다하며, 강요된 침묵으로 덮인 스캔들 역시 적잖다. 해마다 한두 건씩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공권력의 횡포’나 ‘검열 스캔들’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다행히 제주라면 상황은 다를 수 있다. 첫 회를 치르기 전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정책의 기본 의제를 제도화 하는 것이다. 돈 대는 쪽으로서는 아쉽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작은 것을 버리면 크게 얻는다. 원칙에 충실할 때 비로소 제주비엔날레가 올곧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가 이 정도 결단을 하지 못한다면, 아예 비엔날레 꿈은 접는 게 좋을 것 같다. 적잖은 돈 써가며 분란을 일으키고, 정체성마저 거세된 비엔날레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건 피할 수 있으니 말이다. 현대 비엔날레의 근원이 예술의 자율성 수호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런저런 비엔날레 따라잡기나 닮아가기를 말았으면 한다. 비엔날레란 무릇 이러해야 한다는 정의는 애당초 없다고 본다. 60여 년 역사의 카셀 도큐멘타와 19세기 말 시작된 베니스 비엔날레(아트 비엔날레)가 크게 다른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좀 더 숙고하고, 많은 의견을 모아야할 것이다. 각각의 비엔날레들이 다른 시대·역사적 토양 위에서, 제각각 다른 목표와 방향으로 나아갔듯, 제주 역시 ‘제주만의 것’을 또렷하게 세워 출발하는 게 좋겠다.

아울러 ‘제주만의 모든 것’을 아우르겠다는 거창한 포부보다는 구체적이며 널리 공유할 수 있는 몇 가지에 천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는 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며, 시간을 두고 공들여야 할 대목이다. 그렇다면, 올해도 다 기운 11월에 ‘관계자 간담회’ 열고는 내년에 첫 회 비엔날레를 치른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싶다.

끝으로, 국내 비엔날레 일반에서 드러나는 허다한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몇 가지 원칙을 시작 단계에서 확보해야 할 것이다. 비엔날레가 봇물을 이루면서 나타난 폐해들은 올가을에도 허다하게 드러났다. 특정 작가 네트워크의 전유물, 스타작가 돌려막기, 작가-대중과의 괴리, 공공부문의 무지와 권한 남용, 허접한 주제들, 아마추어 수준의 지원시스템 등이다.

어느 비엔날레나 언제고 터질 수 있는 문제인데, 기왕 판을 벌일 요량이라면 아예 준비 단계에서 예방책을 마련하는 게 좋겠다. 첫 발을 뗀 이후에는 제대로 손보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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