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의 파랑새’ 바로 우리 가정에
‘마음먹기 나름’ 적극적 삶이 행복
요즘 행복을 이야기 하는 것보다 불행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다.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에 따른 국민의 불행, 대통령의 불행, 대단히 안타깝다. 기대 가득 했던 국민 행복시대는 이제 막을 내리고 마는 것인가.
마테를링크의 희곡 ‘파랑새’는 어린 오누이가 행복의 상징인 파랑새를 찾는 이야기다. 오누이가 파랑새를 구하려고 온갖 곳을 찾아 다녔으나 헛걸음만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자신의 집 머리맡에 놓인 새장 속에 그 파랑새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줄거리다.
요즘 유행처럼 사용되는 말이 ‘행복’이다. 국민행복·고객행복·농민행복·행복기금 등등. 행복이란 말을 하거나 사용하게 되면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분명 ‘행복’이란 말 그 자체는 긍정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앞서 소개한 희곡 ‘파랑새’ 내용처럼 행복이란 산 넘고 바다 건너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변 가까이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을 떠 들썩 하게 만든 일련의 사건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불행하다고, 아니 불행해 졌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아마도 국민행복시대를 대통령이 가져다 줄 것이란 기대감의 크기만큼 실망감이 크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국민행복시대는 아마도 손이 닿지 않은 먼 곳에 존재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앞으로 어디서 행복을 찾을 것인가? 진정한 행복이란 밤의 궁전 파랑새처럼 우리가 꿈꿀 때, 소망할 때만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꿈꾸는 것 자체가 바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은 우리 주변에 아주 사소한 일상 속에 있다.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행복,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행복, 부모의 사랑을 받는 행복 등과 같이 일상의 평범한 것들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우리는 잘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 비록 그곳이 궁전이 아니라 할지라도 따스한 사랑이 있는 우리네 가정에 행복이 있는 것이다. 권력을 통해 불가능한 일들을 이루고, 차고 넘치는 물질적인 풍요가 항상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최순실 씨 사건처럼 일시적 권력과 물욕의 결과로 영원히 명예에 오점을 남기게 됨은 물론 ‘영어(囹圄)’의 몸이 된 사람들의 모습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행복이란 자기의 삶에 대해서 일시적으로 느끼는 피부 감각적인 만족이 아니라, 한 인격으로서 삶 전체에 대하여 느끼는 지속적인 만족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 대해 전체적이며 지속적인 만족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만약 환상에 사로잡혔거나 또는 생각이 부족해서 그러한 만족에 도취하고 있는 것이라면 참으로 행복하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행복은 자기 자신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는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 온다고 할 수 있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적극적인 자세로 살아간다면 행복은 항상 그 곁에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어선 안된다. 가장 불행한 삶은 비도덕적인 삶이다. 우리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야 자신도 행복해진다. 행복을 이루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도록 돕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서로가 서로에게 친절하게만 대해줘도 우리는 모두 행복해 질 수 있다. 요즘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손에 넣으면 변질되거나 빠져 나가는 자신만의 환상 행복을 좇다가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행복은 늘 일상 속 가까이 있다는 소중한 이치를 모르거나 깨우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씁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