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 ‘대학나무’ 감귤의 비애
과잉 생산 따라 제값받기 어려워
비상품감귤 그야말로 ‘똥값’
육지부 청귤 담그기 신선한 바람
제주보다 지혜로운 소비
건조 통한 상품화 방안도 필요
가을햇살을 받으며 노란 감귤들이 익숙한 제주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돌담 너머 탐스런 감귤을 보고 있노라면 옛 생각이 난다. 집 마당에 감귤나무 열 그루만 있어도 자식하나 공부시킨다하여 붙여진 대학나무,
옛날 귤 품종은 거의 저장이 오래되는 중생·만생이었으나 저장고의 발전에 따라 껍질이 얇고 맛있는 조생종이나 극조생 감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귤 품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겠지만 농민들의 걱정은 한 가지, 귤 값 시세에 ‘울었다’ ‘웃었다’의 반복이다.
요즘 제일 먼저 출하되는 극조생은 그나마 좋은 값을 받는다. 극조생 품종으로 개량한 과수원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달 15일쯤이면 조생종이 본격 출하되기 시작한다. 물론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출하시기를 앞당겨 조금이라도 값 좋을 때 팔려는 얌체 상인들도 있으리라. 해마다 감귤 수확철이면 가슴 졸이는 농민들은 벌써 떠도는 귤 값 하락세에 한숨을 쉬고 있다.
지난해 밭떼기 거래를 했던 상인들이 귤값 폭락에 손해를 보자 올해는 몸 사리느라 거래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말이 나왔으니, 밭떼기거래를 하면 임대인은 신경 쓰지 않아 좋을 때도 있지만 귤 파동 때 상인들은 인건비도 안 나올 모험을 피하느라 귤을 따지 않고 계약금을 날려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때 밭주인들은 정말 골머리가 아프다. 귤을 안 따자니 나무에 손상이 크다. 채소 같으면 갈아엎기라도 하지만 나무를 불태울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시기 놓친 귤을, 버리기 위해 따는 어이없는 일도 생긴다. 설상가상으로 비상품 감귤거래에 제한이 많아 애를 먹는다. 대과·소과,·청과를 힘들게 골라 처치되는 값은 그야말로 ‘똥값’이다.
개인적으로 비상품 소비에 대해 아쉬운 점이 많다. 제주의 브랜드인 감귤이 현재 과자나 초콜릿으로 인기를 얻고 있긴 하지만 아깝게 버려지는 비상품 감귤로 소득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제주가 아닌 육지에서 7~8월이 되면 청귤 담그기에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곳곳의 카페에서는 청귤 차 판매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청귤차가 인기를 끌다보니 청귤 출하금지에 따른 농민들의 반발도 적지 않다.
도대체 어떤 게 청귤인가를 따진다면 대답하기가 곤란해진다. 청귤청도 유자청처럼 상품화 시켜 가까운 매장에서 만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생각지 않고 솎아 버려진 어린 귤이 상큼한 청귤차로 내어질지 누가 알았으랴!
그러고 보면 육지 사람들이 생산지인 제주보다 지혜롭게 감귤을 소비하는 것 같다. 흔하다고 해서 쉽게 볼게 아니라 흔한 것을 귀한 것으로 재탄생 시킨다면, 애물단지가 아닌 보물단지 귤 밭으로 다시 등극할 것이다.
마을마다 터줏대감 같은 감귤 선과장도 겨울철이 지나면 거의 사용하지 않는 수준이다. 덤핑 처리되는 비상품 감귤을 마을 단위 선과장에 건조기를 설치하여 활용도를 높인다면 어떨까하는 조심스런 생각을 해본다.
건조된 귤피나 내용물은 무궁무진하게 쓸 수 있다. 예를 들면 미백효과를 강조한 귤 모양의 비누라든가 치약·사료·음식에 들어갈 부재료나 양념으로 사용되고 무엇보다 장기보관이 유리하다는 점이다.
또한 주민들끼리 공동수익이 배분되고 나아가 돈독한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하나보다 둘이 낫다고, 혼자하면 힘들지만 여럿이모여 공동작업장을 살린다면 일자리창출로 농촌에도 젊은 층 유입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을이 잘 살고 제주가 잘 살기 위해서 땅만 팔게 아니라 이제는 우리 것을 지켜야 할 때다. 제주의 감귤이 중국 사람들 손에 키워진다면 너무 서글퍼질 것 같다. 바람 많은 제주에 태풍이 불어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과일이 바로 감귤이다. 주렁주렁 달린 감귤형제들을 보라, 끝에 달린 막내 귤이 안간힘을 쓰며 달려있듯이 제주인의 끈질긴 근성을 닮은 감귤. 어려웠던 시절 대학나무 대하듯 사랑으로 키워져 나가길 갈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