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외국어 공해로 ‘신음하는 한글’
외래어·외국어 공해로 ‘신음하는 한글’
  • 고상현 기자
  • 승인 2016.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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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매장서 중국인 호객 위해 중국어 도배 “씁쓸”
행정도 한자어 등 남용 정보전달 문제…개선 필요
▲ 어제 570돌 한글날 제주시 연동 바오젠 거리에 있는 한 매장에 내걸린 중국어 간판.

‘스마트한 운전자의 선택’ ‘격식과 매너를 갖춘 토탈 라이프 스타일 복합 공간’ ‘XX 맥주 샤프한 끝 맛!’ ‘XX 듀오의 환상적인 퍼포먼스와 함께 멕켈란 3종 테이스팅 세트 또는 10여종의 와인과 시그니처 칵테일 6종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파티’ ‘프리미엄급 고품격 펜트하우스’ ‘신설(新設)오수관로 부설(附設)에 따른 도로굴착(掘鑿) 공사’ ‘대형건물이 스카이라인을 이루고…운치(韻致)를 자아내 감탄 연발(連發)’

일상생활에서 무분별한 외래어 사용 등으로 한글이 신음하고 있다. 특히 최근 제주를 찾는 중국인이 늘고 있는 가운데 제주 시내 곳곳에서 중국어로만 된 간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9일 오전 제주시 연동 ‘바오젠 거리’를 둘러본 결과 매장 대부분이 중국어 등 외국어로 적혀 있다. 한 약국의 경우 가게 전면이 중국어로 돼 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약국인지 모를 정도였다. 다른 가게들도 한글보다 중국어가 두드러졌다.

이날 거리에서 만난 대학생 김모(22‧여)씨는 “제주도가 아무리 관광 수입으로 먹고산다고 하더라도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서 거리 이름부터 가게 간판까지 중국어 등 외국어로 바뀌는 걸 보면 한국인으로서 씁쓸하다”고 했다. 인근 주민 고모(38‧여)씨도 “제주에 직원 연수 온다고 거리 이름을 중국 회사 이름으로 바꾸고, 가게 간판들도 중국인 호객을 위해 중국어로 바꾸는 걸 보면 수익에만 매몰된 거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알기 쉬운 우리말을 권장해야 하는 행정이 오히려 외래어 남용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제주도가 내놓은 보도 자료를 보면 주요 사업이나 정책에 대해 설명하며 ‘카본프리아일랜드(탄소 없는 섬)’,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아시아 캐리커처 컨벤션’ ‘에어시티(공항복합도시)’ ‘유휴지(노는 땅)’ 노유자시설(노인‧아동복지시설) 등 외래어를 사용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중학교 국어 교사인 노모(29‧여)씨는 “표현의 다양성 차원에서 외래어 등을 적절히 사용하면 한글이 한층 더 풍부해질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며 “하지만 모두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할 행정 자료에서 많은 사람이 못 알아들을 정도로 한자어나 외래어를 남용하는 것은 정보 전달 차원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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