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레기 50% 줄이기 매일 하소연
‘조냥 DNA’로 격조 있는 삶 가능
이른 아침 조용조용 가랑비가 쉬지 않고 내리고 있다. 물을 머금은 코스모스의 하늘거림을 들여다보면서 가을 향기를 짙게 느낀다. 이럴 때면 가슴이 물컹, 인간의 존재를 고민하게 된다. ‘개똥 철학자’라도 된 듯하다.
사람들의 삶에는 항상 쪼가리들이 남겨진다. 종이쪼가리, 유리쪼가리, 휴지쪼가리, 음식물쪼가리 등등. 이들을 우리는 총칭하여 쓰레기라고 부른다. 쪼가리가 되기 전에 그것들은 우리 삶에 중요한 존재였다.
제주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들은 하루 평균 825t이나 된다. 부피도 있고 하니 10t 트럭으로 대략 100대분이다. 이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인구 및 관광객의 기하급수적 증가로 인해 우리 공동체에 커다란 짐이 되고 있다.
시장으로서 “매일 쓰레기 50% 줄이자”고 하소연하고 다닌다. 앞으로 100년이면 한라산 둘레는 모두 쓰레기 매립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보내면서 말이다.
‘우리 어머니 세대나 할머니 세대의조냥정신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밥 한 톨도 아껴 먹던 시절의 미풍양속은 꼭꼭 숨어 버렸다. 쓸만한 것 같은데 버리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처리장의 소각용량도, 음식물처리 용량도 초과하면서 온통 쓰레기와 그 냄새가 청정한 제주시를 뒤덮으려 하고 있다.
클린하우스에서, 중간하치장에서 악취가 진동한다. 이 자랑스럽지 못한 ‘유산’을 그냥 후대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그래서 쓰레기 50% 줄이기를 열심히 외쳐대고 있다. 만났던 시민들은 대다수 수긍을 하는 모습이다. ‘과연 재임기간에 얼마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분명 가야할 길이기에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앞만 보고 나갈 각오를 매일 다지고 있다.
현실에서 아쉬운 것은 지극함이 부족할 때다. 그 지극함이 모이면 보다 청정한 환경은 우리에게 지극함으로 다가 온다. 그것은 예술이며 문화이고 콘서트다.
혹자들은 ‘콘서트와 쓰레기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의문을 제기하곤 한다. 고급의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우리 시민이라면 품격 있고 격조 있는 문화시민의 삶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다.
쓰레기를 그냥 쓰레기로 끝내버리면 너무 허전할 듯싶다. 우리조상 대대로 내려온 조냥하는 생활 나눔의 문화, 이러한 문화적 토대로 거듭 발양되어 지면서 쓰레기가 줄어들고 재활용되어지면서 예술적 터치까지 생각한다면 너무 이상적인 행정가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인가?
그러하지 않을 것이란 쪽에 나는 무게를 둔다. 마음과 영혼이 맑아지면 이 세상이 쓰레기와 더러움으로 덧칠되는 현상을 바라만 보지는 않으려 할 것이고, 쓰레기 줄이기를 통해 ‘한 송이 연꽃을 피워 볼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다져 보기도 한다. 우리 시민들의 삶 DNA 속에는 조상들이 숨결이 깊숙이 내재되어 있다. 물질적 풍요도 누릴 수 있지만 조냥하는 삶에 격조 있는 문화인으로도 우뚝 설 수도 있다.
시민 100인이 모여서 오늘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쓰레기 현안을 놓고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에 대한 응답을 찾아 여행 중이다. 역사는 늘 현장 속에서 답을 찾아왔듯이 시장인 필자 또한 ‘미래’를 위해 현장을 다닌다.
또 하루를 보낸 거리는 새벽이 되어 눈을 뜬다. 다시 생기로 넘치는 새벽, 아침은 이렇게 희망으로 출발하기를 모든 이들은 바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어스름 빛이 내리는 순간 간선도로에는 간밤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나뒹굴고 있다. 집에서 시청까지 걸어서 출근하는 새벽의 풍경이다.
마침 기회가 주어져 지금 ‘쓰레기’ 시장으로서 시민 속에 호흡하며 지금의 병폐적인 문제와 협력적으로 희망의 깃발을 올려 보려는 의지를 새롭게 다지는 용기를 내보고 있다. 시민여러분께 당부 드린다. “쓰레기 50% 줄이는 길은 1회용품 안 쓰기에서부터 실천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