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욱 사진전 ‘△의 풍경-탁영’

“고민의 깊이는 크다고 할 수 없지만, 4·3 진실규명 활동에 나서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마라톤에 나도 함께 뛰고 있는 것이고, 이 방식이 내가 4·3 문제를 고민하는 방식입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름 없는 자’의 죽음을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한 실험 예술작가의 여정이 시작됐다. 기원과 위무의 행위가 깃든 ‘돌초’ 작업을 시작하며 제주, 지리산, 노근리 쌍굴 등을 찾아다닌 작가는 장소들이 서로 다른 주장들이 부딪치는 역사 전쟁의 장소라고 생각했다. 역사적 진실에 대해 아무도 분명히 말해주지는 않지만, 그는 역사의 흔적을 드러내 보이는 허구의 ‘탁본’ 작업을 통해 수많은 침묵을 기억해 내려고 했다.
침묵의 기억들을 기록한 고승욱 사진전 ‘△의 풍경-탁영(拓影)’이 아트스페이스.씨(대표 안혜경)에서 오는 6일부터 오는 20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작가 고승욱은 제주 4.3 평화공원 전시실 초입에 있는 ‘백비(비명을 새기지 않은 비)’에 올바른 이름을 새겨주려는 작업들을 이어왔는지도 모른다. 제주의 당집, 성당, 사찰, 교회 등 모든 기원의 정성이 모인 초 99개를 모아 ‘침묵의 기억’인 탁본에 비췄다.
실험 퍼포먼스 예술가답게 검게 탁본한 대형 천에 하얀 칠을 덧바르는 형태로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그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고 작가는 “‘99’라는 숫자는 한계, 좌절의 숫자이고 아픔이지만 한편으로는 가능성으로 바뀔 수 있는 숫자라고 생각한다”며 “나는 아직도 그 작업들이 어떻게 긍정의 에너지로 바뀔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꾸준히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지난 2010년 돌에 불을 켜는 ‘돌초’ 작업에서부터 모호한 경계와 불안한 질문의 ‘말더듬’, ‘말과 돌’ 등 길에서 되살려낸 기억의 그림자 14작품이 걸린다.
제주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고승욱 작가는 ‘엘리제를 위하여’ 등 실험적 퍼포먼스와 다양한 형식적 예술 실험을 통해 새로운 미술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스페이스99, 관훈미술관 등 국내외 개인전·단체전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문의=064-745-3693)